▲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 대통령실 주변 아파트 단지. 서울 용산구는 대통령실 이전으로 아파트값이 상승세를 보여왔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부동산 불패는 신화가 아니다. 이는 집값만은 반드시 잡겠다던 역대 정부를 비웃는 백래시였다. 사후약방문식 부동산 정책은 돈이라는 가치 앞에 일사불란한 ‘집단지성’의 힘에 백전백패했다.
하지만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신화는 책 속에 기록으로 남아 있거나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을 때나 신화로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부동산 불패라는 현실 속의 신화가 무너지거나 최소한 균열이 생길 수 있어 보인다.
바람은 미국에서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미국은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이고 폭을 넓히고 있다. 한국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부동산 시장의 자금공급원인 대출을 죄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영끌’은 물론 웬만한 소득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치솟는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쉽지 않게 된다. 예측이 아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41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지난 6월10일(현지시각) 미 노동부는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6% 급등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81년 12월 이후 최대폭 상승으로 지난 3월(8.5%)을 뛰어넘는 수준의 상승률이다. 심지어 시장전문가들이 예측한 5월 CPI 상승률 전망치 8.3%를 상회한다. 충격적 물가상승률에 주식시장은 붕괴하고 채권금리는 치솟는 등 시장은 발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우선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전방위로 급등했다. 에너지는 전년 동월보다 34.6% 치솟아 2005년 9월 이후 가장 크게 올랐고, 이 가운데 휘발유는 같은 기간 48.7% 폭등했다. 식료품은 1년 사이 11.9% 급등해 1979년 4월 이후 43년 만의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고, 전기료도 12.0%나 폭등했으며, 전체 CPI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 비용도 5.5% 상승했다.
상황이 한결 나쁜 건 물가상승 추세가 쉽사리 진정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물가급등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로 인한 중국발 봉쇄, 전세계적 가뭄 등 공급 사이드의 문제가 큰데 공급 사이드를 억누르는 요인들이 수다하다 보니 공급이 언제 풀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벌써부터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근심되는 상황이다.
7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높은 미 연준
5월 CPI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기대했던 미 연준(Fed)으로선 예상과 전혀 다른 전방위적 인플레이션 가속화에 통화긴축의 고삐를 바짝 죌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미 연준이 6월 14~15일(현지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 목표범위를 연 0.75~1.00%에서 연 1.50~1.75%로 0.75%포인트 인상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미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에 나선 것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시절인 1994년 이후 무려 28년 만이다. 올해 말 금리 점도표 중간값도 3월 1.9%에서 6월 3.4%로 대폭 상향 조정됐다. 이에 따라 7월 열리는 FOMC에서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근 40년 만에 처음 경험하는 인플레이션인 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으로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인플레이션의 상승추세를 꺾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이에 당분간 미 연준이 경기둔화에 대한 근심은 접고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총력을 경주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지금으로선 인플레이션이 추세적 하락기조로 접어든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라고 봐야 할 듯 싶다.
물가와 환율이 치솟고 증시가 녹아내리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상황은 한결 심각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5.4% 올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8년 8월(5.6%) 이후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은은 물가가 당분간 5%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대인플레이션도 3.3%로 전달(3.1%) 보다 0.2%포인트 상승했는데, 이는 2012년 10월(3.3%) 이후 9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6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9.7% 급등했다.
환율 또한 폭등을 거듭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고전하던 2009년 7월14일 이후 처음으로 1300원선을 돌파했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로 달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데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추세적으로 올릴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진 데 따른 결과다. 한편 증시는 연일 폭락을 거듭해 2300선대까지 내려왔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상승분을 거의 대부분 반납한 것이다.
부동산을 위시한 자산시장의 대세하락은 불가피
2000년 이후 대한민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은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없다. 또한 미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역할을 한 기억이 희미하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이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선 것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지금 우리에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분명한 건 미 연준을 필두로 한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며, 이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기준금리의 추세적 인상과 양적 긴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공개적으로 경기침체(recession) 가능성을 언급하면서까지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올인하고 있는 연준이 7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경우 미국의 기준금리는 상단이 2.5%가 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기준금리는 미국의 금리 상단과 같은 1.75%다.
인플레이션과 환율급등을 감안할 때 한국은행으로선 7월에 빅스텝(0.5%)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기준금리가 2%대를 향해 거침없이 진군하는 지금, 기준금리 0.5%대에 형성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모하다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근래 부동산을 위시한 자산가격의 대폭등은 유동성 홍수에 기인한 면이 압도적이다. 바야흐로 유동성 대홍수의 시절은 가고 긴축의 시대가 왔다. 유동성 축소 및 경기둔화 우려에 따라 이미 가상화폐와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있으며 곧 부동산이 뒤따를 것이다.
2014년부터 시작해 작년까지 지속된 부동산 대세상승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부동산, 좀 더 좁히면 서울의 부동산은 불패라는 신화가 만연했다. 허황된 믿음이다.
인간이 만든 것 중 불패는 없으며 서울 부동산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본질가치를 아득히 벗어난 가격은 본질가치에 수렴되기 마련이며,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땅을 둘러싼 욕망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토지정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투기공화국의 풍경’을 썼고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함께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