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 간담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것)에 맞춰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에 더욱 속도 낼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금융사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은 조달금리 상승, 차주들의 부도률 상승 등으로 이어지는 만큼 금융사들은 건전성 등 위험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안에서도 실적을 놓고는 약간의 표정 차이가 보이는데 은행은 이자수익 확대에 따라 실적 증가가 예상되는 반면 증권사는 증시 침체에 따른 실적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이날 국내 주요 시중은행장을 시작으로 7월까지 보험사, 증권사 등 각 금융권 CEO들을 만나 간담회를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이 원장이 취임 직후 금융권 CEO 간담회에 속도를 내는 것은 그만큼 현재 글로벌 금융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국이 물가상승(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한국은행 역시 7월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것)을 진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은 금융사의 유동성과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금감원의 감독 강화와 별개로 각 금융사는 금리인상 전망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대책 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데 긴장감 속에서도 은행, 보험, 증권 등 각 업권별 표정은 조금씩 달라 보인다.
우선 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올해 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금리 역시 빠르게 오르기 때문인데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보통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은행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NIM(순이자마진)은 0.03~0.04%포인트가량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분기 말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원화대출 규모는 1100조 원이 조금 넘는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4대 시중은행의 이자수익이 3천억~4천억 원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이복현 원장도 이날 국내 17개 시중은행 은행장을 만나 적정한 수준의 대출금리를 적용할 것을 당부했다.
이 원장은 “금리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있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어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은행들은 금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산정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오르면 계좌건별 수익성이 올라가는 것은 맞지만 지금은 전체 대출 잔액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라 지금 시점에서 올해 전체 실적이 늘어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가운데)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들과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
증권업은 금리인상기 실적 확대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주식시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으로 올해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미국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까지 더해져 한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증시부진의 주요 원인으로는 외국인투자자의 자금 이탈이 꼽히는데 향후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되면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자금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7월 다시 한 번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올해 안에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상단이 1.75%로 같다.
증시 부진은 국내 증권사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증시가 부진하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기업공개(IPO)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올해 기업공개시장만 보더라도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등 주요 기업들이 상장 계획을 뒤로 미뤘다.
국내 증권사들은 증시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금융(IB)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브로커리지 수수료의 하락분을 모두 넘는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경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증권사 IB사업은 태생적으로 높은 이익변동성과 낮은 이익가시성을 지녀 증권주 투자포인트로는 한계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IB사업을 키우는 전략이 최선일 수 있으나 현재의 녹록치 않은 대외여건 환경 등을 고려할 때 하반기 IB사업 성장 기대감은 낮출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국내 대다수 증권사들은 1분기 실적이 크게 후퇴했는데 증권업계는 올해 내내 이런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국내 증권업이 지난해 거래대금 급증에 힘입어 5개 증권사가 영업이익 1조 원 시대를 여는 등 사상 최대 호황을 맞이한 것과 정반대 상황에 놓인 셈이다.
보험업은 기준금리 상승에 따라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왔으나 정부의 규제 완화로 한숨 돌린 분위기다.
국내 보험사들은 올해 들어 기준금리 상승으로 대표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비율이 빠르게 하락했다.
금리와 채권가치는 반대로 움직이는데 최근 금리상승으로 RBC 산출에 들어가는 채권가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RBC비율은 보험사의 가용자본을 책임준비금으로 나눈 값으로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최근 ‘책임준비금 적정성평가(LAT)’ 제도상 잉여액 일부를 RBC 산출 때 가용자본으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다소 완화해줬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보험사는 최근 금리 급등으로 자본비율 리스크가 확대됐지만 금융당국이 시가평가 부채의 잉여액 일부를 RBC의 가용자본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마련하면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금리상승은 채권의 이자수익 확대 등 자산운용 수익률 증가로 이어져 보험사에 호재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다만 최근에는 보험사들이 자본 확충을 위해 후순위채권 등을 다수 발행해 이에 대한 이자부담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자산운용 수익 확대 효과가 다소 반감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형 보험사 한 관계자는 “기준금리 상승이 보험업에 호재인 것은 맞지만 최근처럼 가파른 금리인상은 오히려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규제완화에도 불구하고 3분기와 4분기에 지금 같은 속도로 금리가 오른다면 RBC 관리에 지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고 내다봤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정부가 경제전쟁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금리뿐 아니라 물가, 유가, 환율 등 대부분 경기지표가 금융위기급에 비교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단순히 금리 움직임뿐 아니라 실물경제 흐름 등 전반적 경기상황과 그동안 개별 금융사의 위험관리 역량 등에 따라 실적이 갈릴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