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년 6개월.
군 복무기간이 아니다. 5월 현재 인기 차종을 계약한 뒤 만나기까지는 입대해서 전역할 때까지와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속되는 출고 적체에 완성차 업체들의 할인혜택도 줄어들면서 차 사기 안 좋은 시절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기다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15일 현대자동차 및 기아 영업소의 차종별 예상납기표에 따르면 이달 주요 차종의 출고대기 기간은 4월보다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기아 EV6는 계약 후 18개월을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지난달보다 대기 기간이 2달 길어졌다.
쏘렌토 가솔린 모델도 12개월에서 14개월로 대기기간이 2개월 늘었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지난달과 같은 18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스포티지 디젤모델은 14개월, 가솔린 모델은 11개월을 대기해야 한다. 차를 받는데 지난달보다 각각 1달 더 걸린다.
카니발 디젤모델은 지난달 11개월에서 13개월로, 봉고 디젤모델은 10개월에서 11개월로 대기 기간이 늘었다.
현대차도 상황이 좋지 않다.
아반떼 하이브리드 모델은 지난달보다 1달 길어진 1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하이브리드를 제외한 아반떼 모든 사양은 출고대기 기간이 지난달 8개월에서 9개월로 늘었다.
그랜저 하이브리드 모델은 지난달보다 1개월 길어진 9개월, 코나 하이브리드는 지난달보다 2개월 증가한 9개월, 베뉴는 1개월 늘어난 10개월을 기다려야 구매한 차를 만날 수 있다.
아이오닉5와 투싼 디젤 및 하이브리드모델은 12개월을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아이오닉5는 지난달과 대기간이 같고, 투싼은 예상 납기 기간이 이달 새로 나왔다.
싼타페 하이브리드 모델은 지난달과 같은 1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고객 주문에 대응하기에도 벅찬 상황이 이어지자 완성차 업체들은 할인혜택을 축소하고 있다.
5월 현재 신차를 구매할 때 기본 제공되는 할인 행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차는 이달 외제차를 보유하거나 현대차 전용카드를 사용하는 등의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기존에 진행했던 프로그램만 지속한다.
지난해 7월 쏘나타 하이브리드 모델과 더 뉴 싼타페에 50만 원, 쏘나타에 최대 5%, 더 뉴 그랜저에 최대 3% 구매 할인혜택을 제공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현대차의 구매 할인혜택은 10개월 째 자취를 감췄다.
현대차는 지난해 8월부터는 고성능 N브랜드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저금리 할부혜택을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5월부터 종료됐다. 판촉행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대차는 어느 때 보다 조용한 한 달을 보내고 있다.
기아도 지난해 7월 K5, 스팅어, 스팅어, 카니발, 모하비, 모닝 등에 최대 250만 원을 깎아주는 할인행사를 진행했다.
그 뒤 지난해 8월부터는 봉고 LPG 모델을 구매하면 20만 원 깎아주는 쪽으로 구매할인 행사를 축소한 뒤 이를 이달까지 지속하고 있다. 이 할인혜택을 제외하면 이달 기아는 할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구매 할인 혜택은 사라진 반면 출고 적체 ‘맞춤형’ 프로모션이 새로 등장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7월부터 ‘아이오닉5 대기고객 전환출고’ 행사를 새로 시작했다. 아이오닉5 대기고객이 넥쏘로 차종을 바꾸면 100만 원을, 아반떼·쏘나타·그랜저 등의 하이브리드로 바꾸면 30만원을 깎아준다.
기아도 ‘기다림’을 테마로 한 판촉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매달 기아 계약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경품을 제공하는 ’기다림, 감사 캘린더‘ 행사를 시작했다. 이달에는 여행상품권 100만 원권 등의 경품을 제공한다.
완성차 업체들이 내놓은 맞춤형 할인혜택처럼 소비자들도 긴 출고대기에 대응하면서 신차 구매 시장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긴 기다림이 일상화되면서 대기 기간이 소비자가 신차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르노코리아 QM6는 기아 쏘렌토와 현대차 투싼 등 막강한 경쟁자가 포진한 중형 SUV 시장에서 지난해 3만7천747대가 판매되며 점유율 10.2%를 차지했다. 기아의 볼륨모델인 준준형 SUV 스포티지(3만2602대)보다 많이 팔렸다.
이런 선전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짧은 출고대기 기간이 꼽힌다. QM6는 이달 계약하면 5~6주 사이에 차량 인도를 기대할 수 있다.
▲ 현대차 '더 뉴 싼타페' 하이브리드 모델. <현대자동차> |
출고적체가 해소되고 차량이 정상적으로 인도되기 위해서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차질을 빚은 완성차 업체 생산이 먼저 회복돼야 한다.
증권업계에서는 생산이 정상화되는 조짐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올해 4월 국내 공장에서 14만9천 대를 출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4월과 비교하면 3.5% 줄었지만 올해 3월보다는 14.9% 증가했다.
기아는 국내공장에서 12만1천 대를 출하해 1년 전보다 출하량이 13.9% 감소했다. 하지만 이는 올해 3월과 비교하면 4.0% 증가한 수준이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설비는 4월 사실상 정상적 가동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단기적으로 등락이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국내 완성차의 생산은 매월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바라봤다.
특히 현재 가장 출고대기가 긴 EV6는 하반기 화성2공장 K3 생산라인에서 병행생산하는 방식의 증설이 예고됐다. 기아는 10월까지 화성 2공장 보완공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아는 최근 1분기 실적발표에서 “반도체 등 부품 수급 상황 개선과 연계해 공장 가동률을 최대화함으로써 대기 수요를 빠르게 흡수하고 판매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 1년 반 동안의 반도체 공급 부족은 긴 대기수요와 극단적으로 낮은 재고를 만들어 자동차 업종은 반도체 공급 완화와 더불어 재고 보충(리스토킹) 국면을 시작할 것이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당장 2분기 기아의 생산은 1분기보다 7~8만대 늘어날 것이다”고 바라봤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출고대기와 관련해서는 상황에 따라 예측하기가 어렵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품으로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