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해외 원정도박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2015년 10월6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고 서울중앙지검을 나와 자신의 차량에 탑승하고 있는 모습. |
‘정운호 게이트’ 수사가 확대되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운명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정 대표의 출소일정에 차질이 빚어져 경영공백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로비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상장의 꿈도 접어야 한다.
상장과 중국진출 등 네이처리퍼블릭의 성장을 위한 굵직한 현안들이 계속 미뤄질 경우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될 수도 잇다.
정운호 리스크가 커지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은 실적이 악화하고 임직원들이 이탈하는 등 휘청이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기업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정 대표가 네이처리퍼블릭을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커지는 파장, 정운호 6월에 나올 수 있나?
22일 업계에 따르면 정운호 대표의 출소시기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정대로라면 정 대표는 항소심에서 감형받아 6월5일에 출소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정 대표의 법조계 구명로비 핵심 인물인 브로커 이민희씨의 신병을 확보해 조사하고 있다.
전관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도 19일 진행됐다. 검찰은 그가 2013~2014년 정 대표의 원정도박 의혹사건을 두차례 무혐의 처분으로 막아 내는 과정에서 전방위 로비를펼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정 대표의 회삿돈 횡령과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17일 네이처리퍼블릭에 제품을 공급하는 납품사와 일부 대리점, 직영점 관리업체 등 5∼6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3일에는 네이처리퍼블릭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네이처리퍼블릭이 납품사들로부터 화장품 등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단가 부풀리기 등의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이 직영매장을 관리해 주는 업체들의 관리용역 비용도 과다산정하는 등 방법으로 자금을 빼돌렸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자금 규모는 수십억 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조만간 정 대표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혐의로 구속영장을 추가로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네이처리퍼블릭의 주주명부를 확보해 차명주식 보유자를 전수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네이처리퍼블릭이 상장을 추진하면서 유상증자 등을 통해 정 대표의 지분율이 100%에서 올해 3월말 기준으로 73.88%까지 낮아졌다.
검찰은 상장을 추진할 무렵 정 대표가 도박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주식이 법조계 인사들에게 로비목적으로 전해진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처리퍼블릭 장외주식은 7월 무렵만 해도 17만 원대에 거래됐다. 검찰은 정 대표가 주식으로 금융권 인사들을 상대로 한 상장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 대표를 둘러싼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면 정 대표의 출소는 당분간 기약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
|
▲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왼쪽)가 2011년에 일본 사이타마현의 오미야 소닉시티홀에서 열린 ‘일본 론칭 기념 고객감사 이벤트’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 |
◆ 네이처리퍼블릭, 실적 악화에 조직도 흔들
네이처리퍼블릭은 올해 1분기에 매출 714억 원, 영업이익 19억 원을 냈다. 지난해 1분기보다 매출은 5.8%, 영업이익은 78% 줄었다.
대부분의 로드숍화장품업체들이 매출을 늘린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실적부진으로 국내 로드숍화장품업체 순위에서도 에뛰드에 밀리며 5위 자리를 내줬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매장확장 전략에 따라 국내 및 해외 매장을 확대하는데 초기 투자비용이 들어갔고 단위 매장 당 매출이 감소했기 때문에 실적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부각된 정운호 리스크에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매장 매출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대체재가 많은 소비재기업인 만큼 오너 리스크로 기업 및 제품 이미지가 실추될 경우 실적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운호 리스크가 커지면서 직원들도 동요하고 있다. 정 대표가 구속된 이후 네이처리퍼블릭을 이탈하는 직원들이 늘어나 조직도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가 상장을 계획하면서 직접 영입에 공을 들였던 이승훈 최고재무책임자(CFO) 상무는 지난해 12월 말 퇴사했다. 이 전 상무와 함께 합류했던 회계법인 출신의 회계사들도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가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되면서 동요된 일반 직원들 일부도 회사를 떠났다.
정운호 리스크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영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셜커머스업체 위메프는 네이처리퍼블릭과 손잡고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기로 한 'K-뷰티 랭킹쇼'를 취소하기도 했다.
정 대표가 롯데면세점 등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유통가에서는 네이처리퍼블릭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처리퍼블릭과 계약했다가 괜히 로비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일까봐 면세점,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이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당분간 네이처리퍼블릭의 신규매장 출점 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멀어진 상장의 꿈, 네이처리퍼블릭의 운명은?
‘정운호 게이트’ 파장이 커지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상장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심사 과정에서 오너의 도덕성과 평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며 “오너의 상습도박 혐의가 인정된 마당에 검찰조사에서 네이처리퍼블릭이 로비로 성장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당분간 상장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호 대표는 3월 말 기준으로 네이처리퍼블릭 주식 73.88%를 보유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2014년 11월 기업공개(IPO)를 위한 대표 주관사로 대신증권을 선정하고 상장을 추진해 왔으나 상장작업은 제자리걸음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중국진출 확대를 추진했는데 상장작업이 지연돼 중국사업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올해 베이징과 상하이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어 중국공략의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올해 개점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운호 게이트 파장이 커지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기업가치도 하락했다.
정 대표가 상습도박혐의로 구속돼 실형까지 선고받으면서 훼손된 기업가치는 로비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더 크게 손상을 입었다.
장외주식 정보제공 전문업체 프리스닥에 따르면 20일 네이처리퍼블릭의 장외주식 주가는 4만95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상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네이처리퍼블릭 장외주식 주가는 지난해 7월에 17만 원대까지 치솟았던 것을 감안하면 10개월 만에 주가가 70% 이상 빠진 것이다.
정 대표가 오너로 있는 한 당분간 상장을 추진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기업가치가 더 하락하기 전에 정 대표가 사모펀드나 대기업에 네이처리퍼블릭을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 대표가 최대 주주 지위를 내려놓고 경영권을 매각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화장품 사업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많아 매물로 나올 경우 관심이 높을 것으로 보이며 주인이 바뀌면 상장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
|
▲ 제주 신라면세점에 입점한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
◆ 무너진 남대문 화장품 ‘미다스 손’ 신화
정 대표는 화장품계에서 ‘미다스 손’으로 유명했지만 도박에 폭행, 로비의혹까지 터지면서 지금은 업계의 ‘검은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듣고 있다.
정 대표는 서울 남대문에서 과일 및 의류 소매업을 하다 1993년 ‘세계화장품’을 설립하며 화장품사업에 발을 들였다.
그는 1996년 ‘식물원’, 1998년 ‘쿠지인터내셔널’등의 브랜드를 선보인 뒤 2003년 중저가 화장품 매장 ‘더페이스샵’을 론칭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창업 2년 만인 2005년에 연매출 1500억 원을 올렸고 그해 사모투자펀드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AEP)에 지분 70%를 매각해 8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했다. 2010년에는 어피니티와 함께 LG생활건강에 지분을 매각해 12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추가로 확보했다.
정 대표는 더페이스샵을 매각한 뒤 2009년 네이처 리퍼블릭 지분 100%를 인수하고 2010년 3월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해 2848억 원의 매출을 내며 국내 5위 로드숍화장품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정 대표에 대한 여러 의혹이 불거지면서 화장품 업계에서 성공한 것도 결국은 로비의 힘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