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원 기자 hyewon@businesspost.co.kr2022-04-24 06:00:00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참치캔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동원그룹과 사조그룹이 소액주주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동원그룹의 지주사 개편을 두고 기관투자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동원그룹을 비판했고 사조그룹은 그보다 앞서 소액주주들과 한 차례 소송전을 치렀다.
▲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24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참치 원양어업으로 성장한 동원그룹과 사조그룹이 모두 주주와의 갈등이 심화해 두 그룹의 대응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동원그룹은 7일 동원산업과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 계획을 발표하고 합병비율을 1대3.8385530로 산정했다.
합병비율을 두고 동원산업 주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동원엔터프라이즈에 비해 동원산업의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낮게 평가됐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합병비율을 산정할 때는 시가와 순자산가치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동원그룹이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기업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종속기업인 동원시스템즈다.
동원시스템즈는 주가순자산비율(PBR) 2.6배, 5년 평균 지배손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34.2배로 평가받았다. 반면 동원산업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6배, 5년 평균 지배손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6.7배로 평가받았다. 특히 동원산업의 가치는 회사를 청산했을 때(PBR 1.0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가치평가 당시 동원산업의 주가가 떨어지고 동원시스템즈의 주가가 높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과 블래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동원그룹의 합병 계획에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동원엔터프라이즈 가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종속기업 동원시스템즈의 지분가치인데 평가기준일에 동원시스템즈는 기업가치보다 훨씬 높게 평가받았다”며 “동원산업의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면 동원산업의 주주에게 매우 불리한 이런 시점에 합병을 결의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동원산업 이사회는 최대주주 이외에 다른 주주들을 고려해 적어도 동원산업의 기업가치가 명백하게 불리하게 산정되는 이 시점을 피할 수 있도록 의견을 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백지윤 블래쉬자산운용 대표는 "이 합병비율은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 대주주에 철저히 유리하도록 만들어졌다"며 "회사의 순자산가치(주당 38만2140원) 대신 기준시가로 합병 비율을 결정하면 최대주주인 김남정과 김재철의 지분율이 각각 3.92%, 1.41%씩 증가하고 금액 기준으로는 최소 1469억 원의 이익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동원그룹의 계획대로 합병을 진행하게 되면 지주사인 동원산업은 김남정 부회장이 48.43%, 김재철 명예회장이 17.38%, 자사주 20.3% 등으로 대주주 우호 지분율이 86%를 넘게 된다.
소액주주와 시민단체도 동원그룹의 합병 계획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경제개혁연대는 19일 동원산업 이사회에 질의서를 발송했고 한국주식투자연합회는 20일 한국거래소 앞에서 동원산업 불공정 합병 규탄 집회를 열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질의서에서 △동원엔터프라이즈와 구체적 합병 목적 △회사에 유리하지 않은 기준시가를 적용할 특별한 사정 여부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합병가액 재조정 의향 여부 등의 답변을 요구했다.
김규식 회장은 이와 관련해 “동원산업 이사회가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을 진행하게 되면 1400억 원대의 손해를 보게 되는데도 이대로 합병을 추진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시너지를 입증해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며 “하지만 두 회사는 인적 물적 구성이 전혀 다른 회사이기 때문에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 사이에 그만한 시너지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원산업은 원양어업과 수산물 가공·판매 유통업, 물류업을 영위하고 있다. 반면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순수한 지주회사로 계열사로부터 상표권 사용료 등을 받는다.
그럼에도 동원산업의 최대주주는 동원엔터프라이즈(지분율 62.72%)로 동원그룹이 합병을 그대로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미 법적대응을 위한 준비도 마쳤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 변호사는 “이달 말까지 동원그룹 및 동원산업 이사회의 입장 변화를 기다리겠다”며 “하지만 입장 변화가 없다면 5월 초에 동원산업 이사들을 상대로 ‘위법 행위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겠다”고 말했다.
▲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왼쪽)과 주지홍 신임 사조그룹 식품부문총괄 부회장.
주주들과 오너 일가 사이에 잡음이 발생한 것은 사조그룹도 마찬가지다.
사조그룹이 주주와 갈등을 빚게 된 시발점도 오너 일가의 무리한 합병 계획이었다.
2020년 사조그룹의 무리한 합병 추진 계획은 2022년 3월 사조오양의 주주제안으로 이어졌다.
2020년 사조그룹 오너 3세인 주지홍 부회장의 개인회사인 캐슬렉스서울이 자본잠식상태인데도 사조산업은 손해를 감수하고 이 회사를 흡수합병하려고 했다.
송종국 사조산업소액주주연대 대표는 이에 반발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조산업소액주주연대는 지난해 6월10일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인용했다. 하지만 같은해 8월11일 제기한 회계장부 등 열람 허용 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지난해 9월 송 대표가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해임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임시 주주총회를 열자 주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조산업 주식을 사들이는 데 계열사를 동원했다. 안건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송 대표가 배임 혐의로 소송까지 준비하자 결국 주 회장이 합병 계획을 거둬들이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후 갈등은 사조오양으로 이어졌다. 사조오양은 주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동원된 계열사 가운데 하나였다. 이에 올해 3월 펀드운용사인 차파트너스는 사조오양 경영진이 주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차파트너스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감사위원을 선임하기 위해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의결권 대리 행사에 나섰고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사조그룹 계열사인 사조오양 이사회에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으로 선임됐다.
김형균 차파트너스 상무는 “표 대결 구도를 고려하면 감사위원 선임이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감사위원 선임으로 이사회 내부에서 다른 사내·외이사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위법한 사항이나 주주 권리침해를 막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여기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정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