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은사(韓銀寺).’
한국은행이 절간처럼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별명이다. 정부 정책에 관해 적극적으로 비판이나 반론을 하지 않는다는 비아냥이 섞여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는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한국은행을 한은사가 아니라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 변모시키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8년 만에 외부출신으로 한국은행 총재에 오른 이 총재가 한국은행 직원들의 불만을 다독이며 조직을 어떻게 변모시켜나갈지 주목된다.
이 총재는 21일 오후 서울시 중구에 있는 부영태평빌딩에서 취임식을 열고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이 총재는 취임사에서 “통화신용정책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를 가장 잘 아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로서 한국은행의 면모가 더욱 굳건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 총재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경제 상황에 대응해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조직을 쇄신해야 하는 숙제도 풀어야 한다.
이주열 전 한국은행 총재가 8년 재임하는 동안 한국은행 직원들의 불만이 많이 쌓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직원들은 다른 금융공기업과 비교해 뒤처진 급여와 복지, 특정 학교나 지역 및 부서가 우대받는 인사 편향성 등으로 불만이 높아졌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다국적 컨설팅회사 맥킨지에 의뢰했던 조직문화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 건강도는 100점 만점에 38점을 받는 데 그쳤다.
한국은행 직원들은 이 조사에서 한국은행을 ‘한은사’,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는 조직’, ‘수재의 무덤’ 등으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재도 이러한 직원들의 불만을 고려해 조직을 바꿔나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직원들의 성과에 적절한 보상을 받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고 업무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취임사에서 “개개인의 동기부여와 조직의 성과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사명감이나 보람 못지않게 인사·조직 운영이나 급여 등에 있어서의 만족도도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산이나 제도 등 여러 제약들로 인해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하나둘씩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은행의 침체된 조직 분위기를 다잡고 업무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외부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의식해 정부 정책에 제 목소리를 내고 민간기관과 교류도 확대한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이 총재는 취임사에서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한 연구성과를 책상 서랍 안에만 넣어 두어서는 안된다”며 “정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의 전문가와도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를 향한 한국은행 노조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한국은행 노조원 785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56%가 이 총재의 취임에 긍정적으로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관해 한국은행 노조는 이 총재의 정책수행 역량의 탁월성과 전문성, 직원들의 처우 개선과 역량 개발 등에 대한 기대감 등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은행 노조는 20일 성명에서 “이 총재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참담함 속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며 “난파선을 정상화하는 구원투수로서 한국은행의 위상과 직원들의 자긍심 또한 제고할 수 있는 존경받는 총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