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미세공정에 쓰이는 EUV(극자외선)장비를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의 올해 장비 출하량이 고객사 수요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 EUV장비 주요 고객사들의 반도체 파운드리 시설투자가 기존 계획보다 크게 위축되거나 지연되는 일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SML은 현지시각으로 20일 콘퍼런스콜을 통해 1분기 실적과 올해 EUV장비 출하량 전망을 발표했다.
피터 베닝크 CEO는 글로벌 IT제품 생산차질 사태에도 고객사들의 반도체장비 수요는 강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ASML의 중장기 실적에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다만 올해는 주요 고객사의 EUV장비 수요 대비 출하량이 60%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고객사들에 장비를 인도하는 시점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UV장비에 쓰이는 네온 등 소재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본격화되며 올해 지속적으로 EUV장비 생산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ASML은 1분기에만 20억 유로(약 2조7천억 원) 규모의 장비 매출 반영이 2분기 또는 그 이후로 지연되었다며 반도체 공급망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ASML의 1분기 실적발표와 관련해 최대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TSMC가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비해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만큼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와 TSMC가 집중하는 반도체 파운드리 미세공정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데 EUV장비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베닝크 CEO가 언급한 대로 올해 내내 EUV장비 출하량이 고객사들의 주문량을 밑도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삼성전자와 TSMC 등의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 계획도 계획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은 모두 미국에 각각 20조 원 안팎을 투자해 새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TSMC는 일본, 인텔은 유럽에도 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ASML은 장비 생산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비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 수급 차질이 해소되어도 장비 생산을 늘리기 충분한 인력을 고용하고 교육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 장비 공급 지연 사태가 더욱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베닝크 CEO는 현재 ASML의 장비 수주량이 290억 유로(약 39조 원) 규모로 역대 최고치에 이른 만큼 현재 들어온 장비 주문을 내년 말까지도 공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SML은 올해 모두 55대의 EUV장비 공급을 목표로 두고 있다. 1대당 평균 가격이 2억 유로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현재 수주한 물량 가운데 일부만 공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물류난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네온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진 점 등을 고려하면 ASML이 올해 출하량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이제 막 대규모 시설투자에 발을 뗀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주요 반도체 고객사들이 결국 2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만 장비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당분간 투자 위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주요 파운드리업체들이 3나노 이하 반도체 미세공정 생산라인을 도입하고 고객사 주문을 받아 양산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는 시기도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베닝크 CEO는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에도 반도체 수요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며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시장에 중장기적으로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ASML이 최근 장비 공급 차질로 실적에 악영향을 받고 있지만 2025년까지는 생산을 정상화해 과거에 제시했던 수준의 성장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베닝크 CEO는 하반기에 열리는 콘퍼런스콜을 통해 반도체장비 생산 확대를 위한 노력과 공급망 현황 등을 다시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