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리비안에서 출시한 전기차 'R1S'. |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 공급난이 앞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에 가장 큰 리스크로 떠오르며 완성차 생산 및 출하량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
전기차 전문기업 및 전기차 출시 비중을 확대하는 완성차기업,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해 공급하는 제조사들이 모두 공급부족 사태에 직격타를 맞아 성장 목표를 낮출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지시각으로 18일 RJ 스캐린지 리비안 CEO의 말을 인용해 “앞으로 자동차업계가 겪을 배터리 공급부족 사태의 고통은 반도체 공급부족보다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캐린지 CEO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현재 전기차 배터리업체들의 생산 물량이 앞으로 10년 동안 자동차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규모와 비교해 10% 미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이 수요 증가에 맞춰 급속도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장기간 공급부족 사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배터리 공급부족 사태는 배터리셀 자체의 생산뿐 아니라 기본 소재가 되는 리튬과 니켈, 코발트 등 광물 원재료의 채굴 및 가공 측면에서도 원인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5년 59GWh 수준에 불과하던 세계 리튬배터리 수요가 2021년 400GWh, 2022년 600GWh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스캐린지 CEO는 최근 세계 자동차업계를 덮쳤던 반도체 공급부족이 배터리 공급부족에 비교하면 ‘예고편’에 불과할 것이라며 배터리 수급 차질이 20년 가까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리비안은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전기차 스타트업으로 최근 배터리 공급부족에 직격타를 맞아 신형 전기차의 배터리 수급처를 다변화하고 가격을 높이는 등 조치를 내놓았다.
테슬라와 포드, GM 등 다른 전기차 전문기업 및 전기차 출시를 확대하는 완성차기업들은 직접 배터리 및 소재업체와 계약을 맺거나 공동 생산투자에 뛰어드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완화했다.
친환경차 전문매체 일렉트렉은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 포드와 SK온의 전기차 배터리 공동 생산체계 구축을 이런 노력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일렉트렉은 이들과 같이 선제적으로 대규모 생산 투자를 통해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힘쓴 기업들이 공급부족 사태 영향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GM이 직접 광물 채굴업체들과 직접 협력해 리튬이나 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시도도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리비안의 스캐린지 CEO가 예측한 대로 배터리 공급부족 사태가 대규모로 발생해 장기간 자동차업계를 덮친다면 끝까지 타격을 피하는 일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현재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해 전기차가 안고 있는 큰 약점 가운데 하나는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원가 및 판매가격이 꼽힌다.
전기차 배터리 공급부족으로 원가가 상승하면 전기차 가격도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어 시장 전체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내연기관 차량 운행 축소와 전기차 비중 확대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추진하는 전 세계 주요 국가 정부들이 가장 우선순위로 앞세우고 있는 과제 가운데 하나다.
배터리 공급부족에 따른 전기차시장 성장 둔화가 결국 전 세계 탄소중립 달성 시기를 늦추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셈이다.
스캐린지 CEO는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 역시 내년까지 정상화되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며 여러 완성차기업들이 반도체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은 반도체 공급부족과 배터리 공급부족 사태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전기차업계에 이중고로 작용하게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전기차업체들이 이런 악재를 극복할 만한 방법을 찾거나 시장 상황이 개선되기 전까지 성장 목표를 다소 낮출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리비안은 공급망 차질 상황을 반영해 올해 전기차 생산 목표를 기존 5만 대에서 절반인 2만5천 대로 낮춰 내놓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