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뒤를 이어 검찰 수장에 오른 김오수 총장이 사실상 정부여당의 검찰수사권 폐지 입법 움직임에 반기를 들었다.
김 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전국검사장회의를 열고 검찰총장 자리를 걸겠다며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만약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서는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직에 연연하지 않고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김 총장은 검찰 수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도 유례없는 일이라며 변화로 생긴 피해가 모두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논평을 내고 '검수완박'을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더불어민주당은 기득권과 특권 지키기에만 급급해 본분을 망각한 검찰을 정상화하기 위해 수사권 분리 입법 논의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고 수석대변인은 “검찰이 그동안 본인들의 직분에 충실했다면 국회가 검찰개혁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며 “수사권 남용과 선택적 법집행에 대한 지적에 조금도 반성하지 않다가 이제와서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된다고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는 모습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고 비판했다.
검찰집단의 반대 입장 표명을 두고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하며 김 총장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고 수석대변인은 “국가공무원들이 이렇게 집단행동을 하는 것도 매우 부적절한데 조직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오히려 이들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개탄스럽다”며 “국회의 입법을 그 대상인 국가기관이 거부하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되물었다.
여당에서는 이런 김 총장의 강경한 태도를 두고 정권교체를 이유로 태도를 바꾼 것이라는 비난도 제기된다. 원래 김 총장은 친여권 인사로 분류됐던 데다가 법무부 차관으로 재직하던 때에는 검찰개혁에 앞장섰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홍서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9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1차 검찰개혁을 수용했던 과거의 태도와 판이하다”며 “태도를 돌변할 이유는 정권이 교체된다는 것 말고는 없다”고 꼬집었다.
반면 한때 김 총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던 국민의힘은 김 총장의 태도 변화를 반기는 모습을 보였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같은날 논평을 통해 “국민은 관심도 없는 검수완박에 그토록 열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오죽하면 이 정권이 식물 검찰을 만들겠다고 임명한 김오수 총장마저 반대하고 나섰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치권뿐 아니라 검찰조직 내부에서도 김 총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점은 김 총장에게 더욱 부담이 되는 대목이다.
이복현 부장검사는 10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김 총장이 현재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검사는 검사장회의 참석자를 겨냥해 “직접 지난 수년간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하며 현재의 개판인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들이자 최근 검찰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 논란을 야기한 대부분 사건에 관여한 분들”이라고 비판했다.
김 총장이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민주당이 12일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검수완박 입법을 결정하면 김 총장의 사퇴는 시간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 법안 처리를 강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는 있으나 현 정부 임기가 두 달도 남지 않은데다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1963년 1월9일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났다. 광주대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94년 인천지검에서 검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광주지검, 부산지검, 수원지금 등을 거친 뒤 2009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에 임명됐다.
2013년 검사장급인 서울고검 형사부장으로 승진했고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2018년부터 법무부 차관으로 일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 한 달 만에 사퇴한 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임명 전까지 장관권한대행으로 일하기도 했다.
2021년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중도사퇴하자 김 총장은 6월1일부터 검찰총장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김서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