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최근 지배구조 개편 전문가를 영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내 순환출자 고리 해소 등을 포함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의 보험업법 개정 추진으로 삼성생명 등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할 필요성이 커질 수 있는 데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도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을 첫 번째 과제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 준비
1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 3월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머로우소달리에서 근무한 오 다니엘 이사를 IR팀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을 놓고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오고 있다.
오 부사장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근무한 머로우소달리는 글로벌 컨설팅업체로 의결권 대응 자문과 지배구조 개편 컨설팅 등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2019년부터 삼성전자, 신한금융지주 등의 주주총회 대응 자문을 수행했고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사측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상속이 마무리된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고 지배구조를 개편하기에 적기인 것으로 보인다. 순환출자는 가공자본을 만들고 총수 일가가 지분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하는데 악용돼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승웅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삼성,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그룹은 일부 순환출자고리 해소 등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물산→삼성생명, 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올해 2월에 출범한 2기 삼성준법감시위원회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찬희 삼성준법위 위원장은 1월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삼성과 관련해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일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외부 전문가 조언과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다양하게 경청하면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준법위는 고려대 지배구조연구소에 연구용역을 맡겼으며 삼성그룹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맡긴 지배구조 연구용역 결과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삼성물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로부터 삼성전자 지분 확보하나
▲ 삼성그룹 현재 지배구조(왼쪽)와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매입하는 시나리오. <이베스트> |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에 넘기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게 제기된다.
현행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을 취득원가 기준으로 총 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은 위 기준에서 ‘취득원가’를 ‘시장가격’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보험사의 투자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생명이 현재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지분율 8.51%)은 취득가액으로 계산하면 5조6천억 원이지만 개정안 기준인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면 약 34조 원으로 3%를 훨씬 웃돌게 된다.
결국 보험업법이 개정된다면 삼성생명은 전체 삼성전자 보유지분 가운데 5.6%를 정도를 팔아야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화재도 삼성전자 지분 1.49% 중에서 0.9%를 팔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던 구조의 변화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현재 ‘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기타계열사’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더 이상 보유할 수 없게 된다면 삼성물산이 이 지분을 넘겨받는 방법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유지하기에 가장 쉽다.
삼성물산을 실질적 지주회사로 하는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전자, 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단순화된 지배구조 체제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상당 부분을 매각해야 한다”며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44%를 삼성전자에 매각한 뒤 그 대금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맞교환(스와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 삼성물산의 지주사 강제전환 문제
▲ 삼성물산이 보유한 금융자산 중 상장주식 내역. |
하지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회사 주식가치가 총자산의 50%를 넘는 기업은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2021년 12월 말 기준 삼성물산의 총자산은 별도기준으로 44조1809억 원에 이른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5%의 장부가액은 23조3974억 원으로 이미 총자산의 50%를 훌쩍 넘었다.
다만 삼성물산이 쥔 삼성전자 지분은 현재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돼 있어 공정거래법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10%를 인수해 삼성전자 지분 15.01%를 확보하면서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면 지주회사로 강제전환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삼성물산은 공정거래법상 삼성전자 지분을 30%까지 의무보유해야 한다.
결국 지주사로 전환된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17%를 더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자금 마련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강제전환되면 최악의 경우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 등이 매각 할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이 아닌 삼성전자가 인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함으로써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일가의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고 필요할 때는 자사주를 우호세력에게 넘겨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해 중반 삼성전자 경영구조의 변화가 발생한다면 자사주 매입이 재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