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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왼쪽부터). |
구조조정의 회오리에서 기업도, 사람도 살릴 묘수는 뭘까?
조선3사에 대한 정부와 채권단의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 회사들에서 노사갈등 위험이 커지고 있다.
갈등양상도 ‘3사3색’인 듯 보이지만 최대현안은 고용안정이다. 회사가 살아난다한들 내가 일터를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고용안정을 놓고 노사간 대타협이 절실하다. 조선업계에서 노사가 한발씩 양보하는 대타협은 불가능한가?
◆ 삼성중공업 노동자협, 임금인상보다 고용보장
1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가 최근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뜻을 회사쪽에 전달했다. 지난해 임단협 타결안에서 합의했던 기본급 0.5% 인상, 1인당 격려금 250만 원 지급안에서 한발짝 물러선 것이다.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임금동결 카드를 꺼내든 것은 채권단의 강도 높은 자구안 마련 요구에 고용불안이 현실화한 데 따른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고통분담에 참여해 회사의 경영위기를 돌파하는 데 힘을 싣겠다는 뜻이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지난해 정년퇴직과 상시 희망퇴직을 통해 1천여 명 가량을 줄였다. 그런데도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면서 주채권은행을 통해 자구안 마련을 요구하자 직원들 입장에서 고용불안이 최대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의 이런 제안이 최근 조선업계 전반에 예고된 대량실업사태를 최소화할 대안이 되어줄지 주목한다. 구조조정의 태풍 속에서 노사 모두 뼈를 깎는 자기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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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성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 |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는 물론이고 회사의 경영이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고용만 보장한다면 언제든 임금동결에 합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중공업 노사는 다음달 초 쯤 첫 상견례를 시작으로 협상을 이어간다. 삼성중공업은 다음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보방안 등을 담은 자체 자구책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과 면담도 예정돼 있어 구조조정 관련 논의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고통분담을 감수하겠다는 직원들의 뜻을 받아들여 구조조정안에 고용안정 방안을 담을지 주목된다.
◆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노사 불신 어떻게 하나
현대중공업은 3천여 명 수준의 인력감축을 포함한 자구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이 채권단의 요구에 감원카드를 꺼내들면서 삼성중공업도 이에 맞먹는 수준의 감원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았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삼성중공업과 달리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고용보장은 물론이고 임금인상, 직무환경 수당 상향, 성과급 지급, 성과연봉제 폐지 등을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담았다. 또 사외이사 추천권도 요구하는 등 경영참여도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9일부터 사무직 과장급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고 부서통폐합을 통해서도 20%가량 인력을 감축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노사갈등은 불 보듯 훤한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노조의 회사에 대한 불신이 쌓일 대로 쌓여 최고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사외이사 선임권을 요구하며 경영참여를 선언한 것도 더 이상 회사를 믿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조는 경영진이 지난해 6월 인력 구조조정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도 희망퇴직을 또 다시 강행한 데 대해 극도의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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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형록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
백형록 노조위원장은 지난 4일 임단협 출정식에서 “올 임단협 과정에서 인사 경영에 개입해 무능 부실 부패 경영을 끝장내겠다”며 강력투쟁을 예고했다. 사측도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위기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데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노사 대표는 10일 울산 본사에서 상견례를 겸한 올해 첫 임단협을 열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 역시 총고용보장, 제도개선을 통한 임금인상, 하청노동자 처우개선 등을 뼈대로 임단협안을 확정하고 강경 대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감원이 능사인가
조선업계는 인건비 비중이 큰 편이다.
10일 한국2만기업연구소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 조선3사의 지난해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1.2%였다. 삼성중공업이 13.7%로 가장 높았고 대우조선해양은 10.0%, 현대중공업은 9.9%로 집계됐다.
수주가뭄 속에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인력감축만한 카드를 찾기도 쉽지 않다. 조선업계 구조조정에서 인력구조조정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채권은행이 겉으로 회사가 알아서 잘하라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인력감축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업계는 종사자수가 많은 것만큼이나 그 파장 또한 막대하다. 특히 조선3사가 거점을 둔 울산과 거제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미 관련 5개 계열사들과 중소 조선사, 하청업체와 협력업체에서 실직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조선사 구조조정의 회오리에서 공생하려면 노사가 현실을 직시하고 상호신뢰와 양보를 통한 대타협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 정부의 구조조정 압력에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해 옥석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감원에 나설 경우 조선업 경쟁력 약화를 부를 것으로 경계한다.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구조조정한다고 비용절감을 위한 획일적이고 과도한 인력감축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때 일본이 정부의 과도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한국에 세계 조선업계 왕좌를 넘겨준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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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
일본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조선시장 1위였으나 1차 석유파동을 거치며 수요가 70% 이상 급감하자 정부 주도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조선업 전문인력이 대량해고를 당했고 조선 호황기가 다시 찾아왔으나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조선업은 경기순환에 따른 사이클 산업으로 불린다. 선박 공급과잉으로 당장 발주가 부진하지만 2018년 이후 조선시장이 회복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1~2년 사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수주를 못했다고 해서 사람부터 줄이다보면 앞으로 조선업황이 회복될 경우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스웨덴식 노사정 대타협 절실
조선업 구조조정 해법과 관련해 스웨덴식 노사 대타협이 참조할 만한 사례로 떠오른다. 스웨덴 샬트세바덴 협약과 렌-마이드너 협약이 그것이다. 둘 다 논란도 적지 않았지만 경제난과 고용문제를 함께 푸는 사회적 대타협의 모델로 자주 일컬어진다.
이 협약들의 공통점은 노사의 상호존중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노동계는 노동 유연성과 임금억제 방안을, 사용자는 고용확대와 재원 부담 증대 방안을, 정부는 복지확대와 실업대책 등 명확한 정책목표를 세우고 접근하는 것이다.
어느 일방의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대타협은 성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갈등만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스웨덴은 바이킹의 후예답게 한때 세계 조선시장을 주름잡았다. 하지만 스웨덴 조선업은 한국 등 신흥 강국들이 부상하면서 가격경쟁에서 밀리다 쇠퇴의 길을 걸었다.
스웨덴 정부가 10년 이상 수조 원의 자금을 퍼붓는 등 지원을 했으나 백약이 무효했다. 1986년 스웨덴 남부 항구도시 말뫼는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은 뒤 실업률이 20%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스웨덴 조선산업의 몰락은 최근 조선업계 위기와 함께 이른바 ‘말뫼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고 있는데 남부 항구도시 말뫼가 대규모 실업사태의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노사의 대타협 정신과 정부의 지원책이 수반됐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