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에 ‘롯데맨’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쇄신의 열쇠를 외부인사에게 맡기면서 롯데그룹 공채 출신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모양새다.
16일 롯데쇼핑 조직 구성을 살펴보면 외부인재의 충원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롯데쇼핑이 15일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올해 새로 영입된 미등기임원 대부분이 외부 출신이다.
롯데그룹 유통군 헤드쿼터(HQ) 디지털혁신센터장에는 이베이코리아 출신의 현은석 부사장이 1월에 선임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 부사장은 정보기술(IT)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는 2016년 5월부터 롯데쇼핑에 합류하기 전까지 이베이코리아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했다.
그 전에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오라클에서 1994년부터 2014년까지 일하면서 상품개발자,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세일즈 컨설팅 디렉터 등 다양한 보직을 두루 거쳤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오라클코리아에서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 책임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롯데그룹과 한 차례의 인연도 없던 현 부사장이 롯데쇼핑의 디지털 전환을 담당하는 디지털혁신센터장에 선임된 것은 롯데그룹에 더는 순혈주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현 부사장 이외에 올해 롯데쇼핑의 새 임원으로 발탁된 인물 대부분도 모두 외부 출신이다.
이승희 롯데쇼핑 백화점 오퍼레이션TF팀장 상무와 안성호 롯데쇼핑 백화점 스토어디자인부문장 상무보는 모두 롯데백화점의 라이벌인 신세계백화점에서 데려온 인물이다.
롯데쇼핑이 2월에 백화점 MD1본부 럭셔리브랜드부문장으로 영입한 조형주 상무보는 신세계인터내셔날 출신이다.
롯데쇼핑이 사업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새 임원 가운데 롯데맨은 유통군 HQ 재무혁신본부장에 선임된 장호주 부사장이 유일하다.
롯데쇼핑의 이런 움직임은 롯데그룹 공채 출신에게 경고등을 울리는 신호로 여겨진다.
신 회장은 2015년부터 시작된 롯데쇼핑의 위기 상황에서 항상 롯데그룹 공채 출신을 중용하며 부진의 탈출구를 찾으려고 했다.
2017년에는 롯데그룹 조직개편을 통해 유통BU(비즈니스 유닛)를 만들면서 초대 BU장으로 발탁한
이원준 대표이사 부회장은 1981년 롯데그룹에 입사한 정통 롯데맨이다.
실적 부진에 따라 이 전 부회장을 유통BU장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발탁한 인물도 여전히 롯데그룹 공채 출신이었다.
이 전 부회장의 뒤를 이어 롯데그룹 유통BU장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를 겸직했던
강희태 전 부회장은 1987년 롯데쇼핑에 입사해 30년 넘게 롯데쇼핑에서만 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신 회장의 롯데맨 중용 기조는 2021년 11월 정기 임원인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 유통군을 총괄하는 수장에 롯데그룹과 인연이 없는 글로벌 기업 P&G 출신의 김상현 부회장을 선임한 데 이어 롯데쇼핑의 백화점사업부 대표에는 신세계백화점 출신
정준호 대표를 앉혔다.
롯데맨만이 갈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자리에 과감하게 외부인재들을 배치한 것은 결국 롯데맨만으로는 쇄신이 어렵다고 보고 외부의 힘을 빌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롯데쇼핑을 대표하는 4개 사업부(백화점, 마트, 슈퍼, 이커머스) 가운데 슈퍼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사업부 대표는 모두 비롯데맨이다.
신 회장의 달라진 기조는 롯데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임원 승진을 앞두고 있는 내부 직원들의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만 보면 1월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상품본부를 MD(상품기획) 1, 2본부, 오퍼레이션본부 등으로 나눴다.
MD1 본부 산하에 놓인 럭셔리브랜드부문은 새로 탄생한 사업부문인데 여기 수장에 신세계그룹 출신의 조형주 상무보를 앉힌 것은 롯데쇼핑이 새로 힘을 주는 사업부문을 이끌 적임자로 내부인재보다는 외부인재를 중용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백화점 대표 직속 기구로 새로 조직된 오퍼레이션TF팀과 스토어디자인부문의 수장에도 각각 외부인재인 이승희 상무와 안성호 상무보를 발탁한 것 역시 ‘새 술은 새 부대'라는 의미를 넘어 '새 부대에는 외부인사'를 중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과거였다면 롯데쇼핑의 속사정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롯데맨들에게 기회를 줬을 법한 자리지만 이 자리들을 모두 비롯데맨으로 채운 것은 더는 롯데맨들에게 보장된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