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부동의 1위 기업이던 인텔이 대규모 전환기를 맞으면서 지난해 삼성전자에 반도체 매출 선두를 내주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팻 겔싱어 CEO는 인텔의 위기 대응 전략을 지휘하는 동시에 기존 사업을 매각하고 신사업에 투자를 확대하는 체질 개선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인텔이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파운드리사업에서 TSMC와 삼성전자 등 막강한 경쟁자에 맞설 투자 전략이 중요해지며 겔싱어 CEO의 공격적 변화 의지가 뚜렷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17일 “겔싱어 CEO는 자신의 사업 전략을 의심하는 증권가의 시선에 지쳐가고 있다”며 “그는 인텔의 ‘화려한 귀환’을 위해 수많은 변화들을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겔싱어 CEO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첫 1년 경영활동 점수를 ‘A-’로 매겼다고 말했다. 최근 인텔에 일어났던 변화들이 대체로 계획했던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텔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이스라엘 아날로그 반도체기업 타워세미컨덕터를 54억 달러(약 6조4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SK하이닉스에 90억 달러(약 10조8천억 원)을 받고 낸드플래시사업을 매각하는 데 성공한 것과 미국 및 유럽에 각각 수십 조 원을 들여 새 파운드리공장을 다수 건설한다는 계획도 발표됐다.
블룸버그는 “겔싱어 CEO가 추진하는 인텔의 변화는 매우 비싼 비용을 필요로 한다”며 “투자자들이 이런 행보에 인내심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연간 22%에 이르는 주가 하락을 이끌었다”고 바라봤다.
겔싱어 CEO가 시장의 부정적 시각에도 자신의 공격적 투자 등 의사결정에 자신감을 두고 있는 것은 인텔이 이를 통해 반도체시장에서 리더십을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는 인텔이 시장에서 최강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받던 2009년과 비슷한 상황을 재현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기술 개발과 시설 투자에 막대한 돈을 들이며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인텔은 최근 주력사업인 PC와 서버용 CPU시장에서 AMD 등 경쟁사의 공세를 받고 있다. 낸드플래시사업을 SK하이닉스에 매각한 것도 더 이상 삼성전자 등에 정면으로 맞서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겔싱어 CEO는 이런 상황에서 인텔이 잘 하는 분야에 더욱 집중해 자체 CPU에 활용하던 공정 기술력을 파운드리에 도입하고 다른 고객사들의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해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세계 파운드리시장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한 대만 TSMC와 최근 파운드리 투자를 적극 확대하는 삼성전자에 맞대결을 피할 수 없지만 이를 감수할 만한 충분한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블룸버그가 예측한 올해 반도체기업들 시설투자 규모는 TSMC가 400억 달러, 삼성전자가 360억 달러 이상, 인텔이 280억 달러 안팎이다.
겔싱어 CEO는 “인텔은 애플과 같은 기업마저 자신들보다 낫다고 인정할 만한 기술을 갖춰내야 한다”며 “반도체시장의 가파른 성장으로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사업을 통해 인텔을 새로운 미래로 이끌고 있다”며 “외부 고객사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한다면 그동안 뒤처지고 있던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겔싱어 CEO는 만 32세에 인텔 최연소 부사장에 오르며 경력 초반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40세에는 인텔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했고 잠시 회사를 떠났다가 2021년 2월 CEO로 복귀했다.
당시 인텔은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CEO가 사내 교제를 금지하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사임한 뒤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임시로 CEO를 맡고 있던 상황이었다.
겔싱어 CEO는 취임하자마자 인텔에 조직 안정화보다 미래 성장을 위한 변화가 절실하다고 판단해 활발한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 신사업 투자 등을 이끌어 왔다.
그는 블룸버그를 통해 “인텔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지긴 어렵다”며 “시장에서 인텔을 향한 엄격한 시선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인텔의 리더십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