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현금 확보계획에 차질이 다소 생겼지만 김 부회장은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상장 전 지분투자(Pre-IPO) 유치와 우수한 실적으로 이를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차세대 배터리로 꼽히는 전고체배터리 개발을 위해 외부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배터리사업은 SK이노베이션의 미래 먹거리이자 김 부회장의 SK이노베이션 탄소중립 전략인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의 핵심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SK온 분할 뒤에도 이사회 의장을 유지하며 배터리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전고체배터리는 현재 배터리에 적용되는 액체 형태 전해질을 고체로 바꾼 배터리를 말한다. 배터리 용량은 늘리면서 무게, 부피, 화재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아직 개발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현재 전고체배터리 개발에서는 이온전도도를 높인 고체 전해질을 구현하는 것이 가장 큰 난제를 꼽힌다. 김 부회장은 이를 협업체계를 갖춰 극복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 공대 이승우 교수진과 협업해 새로운 고체 전해질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이승우 교수진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공동으로 고무 형태 고분자 고체 전해질을 개발해 13일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지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고무 형태의 고분자 고체 전해질을 적용하면 기존 고체 전해질과 비교해 이온전도도를 100배 이상 높일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전기자동차 주행거리를 500km에서 800km로 늘릴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둔 이승우 교수진과 협력해 꿈의 전지라 불리는 전고체배터리 시대를 앞당겨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인류의 편의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0월부터는 미국 전고체배터리 개발기업인 솔리드파워에 3천만 달러(353억 원)를 투자한 뒤 솔리드파워와도 전고체배터리 개발 및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설비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하기로 했다. 가격경쟁력도 확보하고 양산 시기를 앞당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을 통해 지난해 말 기준 연간 배터리 생산능력 40GWh(기가와트시)를 2025년 220GWh, 2030년 500GWh까지 늘리기 위해 대대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새 배터리 격전지로 꼽히는 미국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투자를 계획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5년까지 미국에 건설 예정인 대규모 배터리 생산설비 13개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은 5개를 차지한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가장 많은 수치다.
지난해 12월에는 오너경영인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SK온 각자대표이사에 선임되며 그룹 차원에서 배터리사업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게 됐다.
다만 김준 부회장의 배터리사업 투자를 위한 자금 마련에 다소 제동이 걸렸다는 시선이 나온다. 기존 자산을 매각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세웠었지만 최근 매각 절차가 차질을 빚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4일 페루 88광구와 56광구 지분 각각 17.6%를 다국적 에너지개발기업 플러스페트롤에 매각하는 계약이 페루 정부의 승인 불허로 무산됐다고 공시했다.
SK이노베이션은 페루 광구 지분 매각을 통해 10억5200만 달러(1조2500억 원)를 손에 쥘 것으로 기대해왔다.
또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 지분 49% 매각을 추진해왔는데 이 절차도 현재 잠정 중단된 것으로 파악된다.
SK이노베이션은 SK지오센트릭 지분 49%의 가치를 최소 1조5천억 원 이상으로 추산했지만 시장에서 1조 원 안팎으로 평가되자 매각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윤활유 자회사 SK루브리컨츠 지분 40%를 1조1200억 원에 매각하는 데는 성공했다. 자산 매각으로 잇따라 조 단위의 자금을 확보하려던 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김 부회장은 자산 매각이 더뎌지더라도 SK온 상장 전 지분투자 유치와 실적 개선을 통해 대규모 투자금을 마련하는 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온은 최근 도이치증권과 JP모건을 주관사로 선정해 상장 전 지분투자 유치에 나섰다.
SK온은 이번 투자유치를 통해 지분의 10%에 해당하는 3~5조 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자금은 해외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에 쓰인다.
SK이노베이션 전체 영업이익과 배터리사업 영업이익을 개선하며 이익체력도 다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으며 영업손실 2조4870억 원을 거뒀지만 지난해에는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상승에 따른 정유사업 호조에 큰 폭의 이익 개선에 성공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영업이익 2조 원 이상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배터리사업에서도 올해 연간 영업이익 흑자전망이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SK온이 올해 영업이익 수십억 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SK이노베이션이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기업으로 인정받으며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기 위해서는 실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배터리사업 수익성 개선 등으로 구체적 성과를 창출해 나가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 반등에 성공한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배터리 등 친환경사업을 중심으로 한 사업 다각화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