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AMD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고객사로 맞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AMD는 PC 및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에 이어 그래픽처리장치(GPU)시장 공략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시장 진입도 준비하고 있어 파운드리의 초대형 고객사다.
▲ 최시영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삼성전자로서는 AMD를 안정적 고객사로 잡아둘 수 있다면 대만 TSMC와의 파운드리 공정기술 대결에서 우위를 점유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AMD는 크롬북용 중앙처리장치의 위탁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자 전문매체 톰스하드웨어는 투자회사 JP모건의 보고서를 인용해 “AMD는 보급형 크롬북의 중앙처리장치를 삼성전자 4나노미터 파운드리에 맡길 수 있다”며 “앞으로 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에서 그래픽처리장치를 시험해볼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AMD는 최근 10여년 동안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Global Foundries)와 TSMC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겨 왔다. 특히 10나노 이하 미세공정이 요구되는 반도체는 TSMC가 전량 위탁생산해 왔다.
AMD가 삼성전자에도 미세공정 일감을 발주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TSMC의 차별적 가격정책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서 9월 TSMC는 파운드리 생산라인 부족을 이유로 AMD와 퀄컴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고객사들에 20% 안팎의 가격 인상을 통보한 반면 애플에게는 2~3%의 가격 인상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전문매체 익스트림테크는 “AMD는 5나노 이하의 미세공정을 요구하는 반도체의 위탁생산처를 삼성전자로 다변화하는 방안을 올해 초부터 검토해왔다”며 “TSMC의 애플 우대 가격정책에 불만이 있던 차에 생산라인도 충분히 배정받지 못하자 삼성전자에 일감 발주를 검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봤다.
최근 삼성전자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신제품 ‘엑시노스2200(Exynos2200)’에 적용될 그래픽칩에 AMD의 그래픽 설계자산 RDNA2를 활용하기도 하는 등 두 회사는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회사 퀄컴, 그래픽처리장치회사 엔비디아에 이어 우량 고객사를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AMD를 퀄컴과 엔비디아처럼 고정적 고객사로 잡아둘 수 있다면 다가올 3나노 파운드리 경쟁을 통해 삼성전자가 TSMC와 파운드리 격차를 좁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글로벌 파운드리시장에서 TSMC가 매출 기준 점유율 53.1%로 1위, 삼성전자가 17.1%로 2위에 올랐다. 순위는 1계단 차이에 불과하지만 점유율 격차는 36%포인트나 벌어져 있다.
삼성전자는 TSMC를 넘기 위해 공정 미세화 경쟁에서부터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 양산계획을 세워둔 3나노 파운드리에 신기술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도입한다.
반도체 구성 단위인 트랜지스터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과 채널을 제어하는 ‘게이트’로 이뤄진다. 게이트올어라운드는 트랜지스터의 채널과 게이트가 4면에서 맞닿게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채널과 게이트가 3면에서 맞닿는 기존 ‘핀펫(FinFET)’ 방식보다 반도체가 동작하는 전압을 낮추고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
TSMC는 3나노 파운드리에도 핀펫 방식을 도입하기로 한 만큼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보다 반도체 성능이 뒤처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게다가 2022년 생산을 시작하고 양산체제를 2023년 갖추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삼성전자보다 양산 시점도 최소 6개월 이상 늦다.
AMD가 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에서 그래픽처리장치를 시험생산해보고자 하는 것도 이런 성능과 양산시점 차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AMD는 중앙처리장치와 그래픽처리장치를 넘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시장 진입도 준비하고 있다. 대만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회사 미디어텍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콰이커지 등 중국계 매체들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AMD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10나노 이하의 미세공정을 요구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회사)가 종합반도체회사인 삼성전자와 인텔을 제외하면 AMD, 애플, 미디어텍, 엔비디아, 퀄컴 정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삼성전자로서는 4나노 파운드리를 통해 AMD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AMD가 이후 3나노 이하의 공정을 요구하는 반도체의 위탁생산까지 삼성전자에 맡기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반도체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4나노 파운드리의 수율 문제가 AMD와의 관계 강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 4나노 파운드리는 수율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위탁생산을 삼성전자와 TSMC에 나눠 맡겨 왔다. 하지만 삼성전자 4나노 파운드리의 수율이 기대에 못미치자 신제품 스냅드래곤8 Gen1 생산에서 삼성전자의 일감 비중을 낮추고 TSMC에 더 발주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로서는 4나노 파운드리 수율을 조속히 끌어올려 퀄컴을 잡아두고 AMD를 고객사로 굳혀 3나노 파운드리의 기술 대결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파운드리 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신 장비들을 도입해 공정을 효율화해야 한다”며 “삼성전자가 올해 공격적으로 시설투자(CAPEX)를 집행하고 있는 만큼 수율 문제에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년(2018~2020년) 동안 반도체 시설투자를 연 평균 26조3천억 원 집행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가장 많은 32조9천억 원을 투자했다.
올해는 3분기까지 33조5천억 원을 투자해 기존 최대 기록이었던 지난해를 이미 넘어섰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