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언태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이 4분기 차량 생산 확대에 힘을 실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노조 내 개별 현장조직 사이 갈등이라는 새 변수를 맞닥뜨렸다.
현대차 대표노조인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새 집행부 선출을 앞두고 노동조직 사이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4분기 생산 축소 가능성이 떠올라 국내생산을 책임지는 하 사장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
9일 고용노동부 울산고용노동지청에 따르면 현대차 울산 공장은 2일 신청한 특별연장근로 시작시점을 11월 중순 이후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울산지청 관계자는 “현대차는 14일부터 특별 연장근로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2만8천 명의 노동자 동의를 받기 위해 특별 연장근로 시작을 1~2주 정도 연기하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현재로서는 시작시점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올해 들어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에 따른 생산차질을 겪어 왔다. 현재 차량 계약 뒤 고객 인도까지 차종에 따라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리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4분기 들어 반도체 수급상황이 개선되자 11월부터 일요일 특별연장근로를 도입해 그동안 밀린 물량을 생산하기로 합의했는데 현장 개별공장 노조 대표들이 이에 반대하면서 특별연장근로 도입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현대차 울산 1~5공장과 변속기 공장 노조 대표들은 8일 사업부 대표회의를 열고 조합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없다며 특별연장근로에 동의하지 않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연장근로는 업무 증가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거쳐 주52시간을 넘게 일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데 이를 도입하려면 노사 합의와 별개로 개별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현장조직에서 연장근로에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원인은 한 달가량 남은 노조 집행부 선거로 꼽힌다.
현대차 노조 내부에는 여러 현장조직이 있는데 이들이 각각 낸 후보 가운데 선거를 통해 2년 임기의 집행부를 선출한다.
현대차 노조는 10일 선거관리위원회를 출범해 제9대 집행부 선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1월 중순 후보 등록과 12월2일 1차 투표, 12월7일 2차 투표를 거쳐 12월8일 당선자를 확정한다.
이번 선거에도 예년과 비슷하게 4팀 정도가 후보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데 선거를 앞두고 개별 현장조직을 중심으로 현재 집행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 내 개별 현장조직 사이 갈등은 노조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특별연장근로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10월 울산공장과 전주공장의 MPV(다목적차량) 스타리아 물량 이관을 놓고 각 공장 노조 사이에 갈등을 겪은 데 이어 지금은 고급차에 들어가는 람다엔진 물량을 놓고 울산 공장과 아산 공장 노조 사이에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노조 집행부는 2일 아산 공장에서 고용안정위원회를 열고 람다엔진 관련된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지도부로 공을 넘겼다.
하언태 사장은 노조 내 개별 현장조직 사이 갈등에 직접 개입하기도 어려운 만큼 이런 상황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 사장은 노무 전문가로 대표이사와 울산공장장을 겸임하며 현대차 국내생산을 총괄하고 있다.
이번 사안이 노사 단체교섭이라면 하 사장이 직접 협상에 참여해 노조를 설득하겠지만 이번 사안은 노동자 사이 의견 차이인 만큼 하 사장이 직접 개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해 생산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하루빨리 특별연장근로 도입이 필요한 상황에서 하 사장이 지금의 노노갈등을 지켜봐야만 한다면 그만큼 생산 확대시기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 하언태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오른쪽)과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가운데)이 7월29일 울산 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1년 임단협 합의서에 서명한 뒤 김호규 금속노조위원장(왼쪽)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대자동차> |
결국 하 사장은 간접적으로 담화문을 통해 노동자를 설득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하 사장은 그동안 노사 단체교섭이 막힐 때나 잠정합의안 투표를 앞둔 중요한 순간에 직접 담화문을 내며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올해 성과를 기준으로 내년 성과급이 정해지는 만큼 특별연장근로 도입을 원하는 노동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연장근로는 차량 생산과 출고 증가로 이어져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고객들의 현대차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 사장이 담화문을 통해 특별연장근로를 통한 회사의 이익이 노동자의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하 사장은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협상에 임하는 태도를 보여 그동안 노사 단체교섭을 안정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 노사는 실제로 올해까지 3년 연속 무파업으로 단체교섭을 마무리하는 성과를 냈다. 하 사장이 2018년부터 울산공장장을 맡아 사측 교섭대표로 협상을 주도해 온 성과로 평가된다.
2000년 현대차그룹 출범 이후 노사 단체교섭을 3년 연속 무파업으로 이끈 현대차 울산 공장장은 하 사장이 처음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