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자동차산업의 진정한 ‘게임체인저’는 전기차가 아닌 자율주행차가 될 것이다.” 폴크스바겐 CEO인 헤르베르트 디스의 말이다.
자율주행차는 우리 가까이 다가와 있는 미래다. 많은 세계 주요 완성차업체가 4단계 자율주행차를 시험하고 있다.
일본의 혼다는 운전자가 핸들에서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 3단계 자율주행차를 이미 출시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7년까지 4단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렇다면 현대차의 자율주행 역량은 어느 수준일까? 현대차는 과연 ‘게임체인저’라는 자율주행차시장에서 앞으로 치고 나갈 준비가 돼있을까?
◆ 자율주행차시장에서 현대차의 위치는 어디인가
현대차는 자율주행차시장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이드하우스의 자율주행차기업 평가 리포트인 ‘내비건트 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차와 앱티브 연합은 자율주행차 경쟁력 순위에서 세계 6위에 올랐다. 내비건트 리서치는 자율주행차 경쟁력과 관련해서 기업을 리더(Leaders), 경쟁자(Contenders), 도전자(Challengers), 추격자(Followers) 등 네 개로 나누는데 현대차는 리더그룹에는 들지 못했지만 경쟁자 그룹에서는 인텔-모빌아이연합과 함께 최상위권을 보였다.
실제로 현대차는 눈에 보이는 성과도 내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8월에 아이오닉5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4단계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공개했다. 4단계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회사는 바이두, 웨이모 등 세계적으로 봐도 몇 군데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살피면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미국과 중국은 뛰는데 현대차는 규제에 막혀
그렇다면 현대차의 자율주행 미래는 앞으로 탄탄대로일까?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대차에게 불리한 지점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을 위해서 인공지능(AI)은 필수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통한 자율학습으로 고도화된다. 따라서 자율주행 데이터는 자율주행 경쟁력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주행 데이터분야에서 현대차는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주행거리 데이터에서 가장 앞서 있는 회사는 단연 테슬라다. 테슬라는 세계에 깔려있는 테슬라 차량에서 주행 데이터를 받고 있다. 다른 회사들이 실험을 통해 온 힘을 다해 자율주행 데이터 축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슬라는 앉아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테슬라 자율주행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테슬라 자율주행의 첫 번째 특징으로 바로 이 어마어마한 양의 주행 데이터를 꼽았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자율주행 실현을 위해 방대한 훈련 데이터가 요구되는 가운데 테슬라는 고객의 주행패턴과 돌발상황 데이터 수집을 통해 경쟁사 대비 압도적 속도로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슬라의 누적 주행데이터는 무려 50억 마일(80억4672만km)를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슬라를 제외하면 아직 1억km는커녕 5천만km의 주행 데이터를 쌓은 회사도 없다는 것을 살피면 엄청난 수치다.
테슬라를 제외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주행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은 단연 미국 기업들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자율주행 플랫폼 ‘웨이모’의 누적 자율주행 거리는 3천만 마일(4800만km)에 이른다.
현대차와 앱티브가 합작해 만든 모셔널의 주행거리 데이터는 약 240만km에 불과하다. 절대적으로 적은 수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경쟁자의 주행 데이터가 너무 막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보인다.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 기업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주행거리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2021년 5월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두의 자율주행 플랫폼 ‘아폴로’의 주행거리는 미국에서 16만6245km, 중국에서 143만2316km 수준이다. 아직 모셔널보다 적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모두 2000km의 자율주행 테스트용 도로를 개통했다. 또한 중국 정부가 자율주행 테스트를 위해 라이선스를 발급한 기업만 4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아폴로는 현재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30개 이상의 도시에서 로보택시(이치자동차), 자율주행 미니버스(진롱자동차)를 테스트하고 있다. 아폴로는 로보택시와 자율주행 미니버스를 통해 빠른 속도로 자율주행 데이터를 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0년 5월부터 2021년 5월까지 로보택시의 시범운행 1년 동안 로보택시가 쌓은 주행 데이터는 누적 50만k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최근 열린 제18회 자동차산업 발전포럼에서 “우리나라의 자율주행 관련 경쟁력이 미국과 중국에 비해 매우 뒤쳐져 있다”며 “현대차는 자율주행 관련 기술력이 부족해 앱티브와 협력해 외부로부터 기술력을 확보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규제 관련 이슈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원격 자율주행이다.
테슬라는 30m 밖에서 차량을 원격으로 소환하거나 주차하는 ‘스마트 서먼’ 기능을 자동차에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관련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규제 때문에 이런 기능을 자동차에 탑재할 수 없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별표 6의2 10호 가목 1)의 나)의 (6)에서 원격제어주차 작동범위(SRCPmax)를 최대 6m로 규정하고 있기 떄문이다.
라이선스 문제도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지금 개발 중인 기술이기 때문에 실험을 위해서는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라이선스를 발급받는 게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경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자율주행지능연구실 실장은 최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자율주행 임시주행 면허를 얻는 절차 등이 굉장히 복잡하다”며 “조금 더 쉽게 면허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기술 발전속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주최한 ‘자율주행 산업의 미래:도전과 전략’ 좌담회에서도 규제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박재용 현대차 자율주행사업전략팀장은 “한미 FTA로 북미 자가인증제도 적용을 받는 테슬라와 달리 현대차는 국내 법규를 따르는데 국내 법규는 과거 형식승인제도에서 자기인증제도로 완전히 전환되지 못했다”며 “동일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할 때 상대적으로 국내업체가 가혹한 규제를 받기 때문에 국토교통부에 완화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 자율주행시대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기업’ 될 수 있을까
물론 현대차와 정부 모두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자율주행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노력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최근 현대차가 카카오, KT, 쏘카 등 국내 IT기업과 결성한 ‘한국자율주행산업협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현대차와 함께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IT기업이라는 것이다. 카카오T에 등록돼있는 엄청난 수의 택시들의 주행데이터, 차량공유 플랫폼 쏘카가 그동안 계속해서 축적해온 주행 데이터 등을 현대차가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현대차는 2023년 글로벌 상용화 목표인 아이오닉5 로보택시를 활용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아이오닉5 로보택시가 계획대로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세계에 공급된 현대차의 로보택시가 보내오는 데이터들이 현대차의 자율주행 역량을 높이는 데 커다란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규제완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올해 3월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을 정식으로 출범시켰는데 이 사업단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가 자율주행과 관련된 법제도 전반을 다시 검토하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자율주행 기반 마련을 위해 4대 핵심분야(운전주체, 차량·장치, 운행, 인프라)를 정하고 이 분야의 법, 규제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일본의 혼다가 내놓은 레벨3 자율주행 차량은 실제로 운전자가 손에서 핸들을 놓아도 무방하다. 운전석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를 질주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다.
현대차가 폭스바겐 CEO의 말처럼 자동차시장의 진정한 ‘게임체인저’인 자율주행차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채널Who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