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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주토피아' 스틸이미지. |
"지금까지 토끼가 경찰이 된 적은 없었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현실을 대변해주는 대사다.
동물원(zoo)과 이상형(utopia)의 합성어인 주토피아는 동물들이 꿈꾸는 도시다. 또 육식동물과 초식동물군에 속한 수많은 종들이 공존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영화는 주인공인 주디가 토끼(생물학적 종)와 경찰관(사회적 종) 사이의 간극을 자각하고 ‘토끼가 경찰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열네 마리의 동물 연쇄실종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표면적으로 추리와 범죄스릴러 장르를 차용했다.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흔치 않은 장면이다.
물론 디즈니는 마치 범죄스릴러를 연상시키는 스토리를 무겁거나 어둡게 풀어가지 않는다.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장면들이 관객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주토피아는 2월17일 개봉해 한달이 넘게 장기상영되고 있다. 개봉 초반 마블의 19금 블록버스터 ‘데드풀’에 밀렸고 그뒤 ‘귀향’의 선전에 눌리기도 했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오르내린 끝에 3월31일까지 무려 약 35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주토피아는 북미에서도 3월 셋째 주까지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면서 총수익 2억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디즈니가 만든 역대 애니메이션 가운데 ‘겨울왕국’, ‘빅 히어로’에 이은 흥행 기록이다.
중국에서도 개봉 15일 만에 10억 위안을 벌어들여 역대 애니메이션 기록인 쿵푸팬더2의 기록을 4년 만에 넘어섰다.
주토피아의 흥행은 좋은 콘텐츠가 규모나 화제성,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입증한 셈이다.
지난해 흥행한 ‘인사이드아웃’이 그랬듯이 주토피아가 뒷심을 무섭게 발휘하고 있는 것은 입소문을 타고 성인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캐릭터 설정이나 모험과 추리를 동반한 흥미로운 줄거리, 다채로운 영상미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도 많다.
그러나 주토피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거울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동물우화라고 해도 무방한 현실풍자로 가득 차 있다.
주토피아에는 캐릭터의 향연이라고 할법한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크게 보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 범주화된다. 주인공 주디는 초식동물인 토끼다. 우연찮게 주디와 함께 사랑인지 우정인지 분명치 않지만 동반자가 되는 여우 닉은 육식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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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런 하워드(왼쪽)과 리치 무어 감독. |
흔히 이솝우화로 대표되는 동화적 세계에서 토끼와 여우는 운명적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는 ‘이종’들이다.
주토피아는 이런 다양한 이종들이란 결코 화해할 수 없고, 그래서 언제나 폭력적인 관계라는 통념을 뒤집는다.
추리와 범죄스릴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반전에 있다. 주토피아는 단지 연쇄살인범을 쫓는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반전의 묘미를 극대화한 점에서 범죄스릴러에 더욱 가까워졌다. 그 반전이란 성차를 포함한 온갖 생물학적 본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부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주디는 생물학적으로 약자이면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변한다. 또 성공을 꿈꾸며 도시의 쪽방을 전전하는 가난한 청춘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런 주디가 닉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대등한 관계 속에 맹활약하는 것만으로도 폭력과 차별로 얼룩진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통쾌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는 교활한 사기꾼 여우 닉도 마찬가지다. 폭력적인 남성성을 대변하면서도 정의를 구현하는 '최초의' 여우 경찰로 변신해 편견을 보기 좋게 뒤집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범죄스릴러가 늘 그렇듯이 이 영화도 반전의 하이라이트는 범인의 실체에 있다. 단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다.
주토피아를 공동으로 감독한 리치 무어와 바이런 하워드는 주디와 닉의 관계에 대해 “주토피아는 이종간의 연애가 가능한 성적으로 열려있는 사회”라고 말했다.
어디 연애뿐이랴. 모든 폭력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지 않는가. 주토피아는 차이와 편견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가볍지 않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