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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창규 KT 회장 <뉴시스> |
황창규 KT회장이 4년 반 만에 ‘직급제’를 부활시켰다. 최근 대규모 명예퇴직 실시로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취임 후 ‘KT의 삼성화’를 추진해온 황 회장의 경영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KT는 16일 오후 사내 방송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직급제를 재시행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KT발표에 따르면 직급제는 전산시스템 수정 등의 절차를 거쳐 오는 27일부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KT가 이번에 직급제를 부활시킨 것은 4년6개월 만이다. 이석채 전 KT회장은 2010년 1월 수평적 기업문화를 창출해 조직 운영의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며 직급제를 없앴다. 직급제 폐지로 본부장이나 실장, 팀장 이외의 모든 직책은 ‘매니저(Manager)’로 불렸다. 연봉도 직급이나 연차에 관계없이 성과에 따라 지급됐다.
하지만 직급제 폐지 후에도 이 전 회장이 기대했던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오히려 임금인상률이 떨어져 직원들의 사기만 저하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직급제에 비해 부하직원을 통솔하기 쉽지 않은 문제도 잇따라 지적됐다. KT의 한 직원은 “팀장 외에 직원들의 직급이 모두 같은 매니저인 탓에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따라서 KT가 이번에 직급제를 부활시킨 것은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를 다시 높이기 위한 조처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KT가 지난 4월 8300명이 넘는 대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한 뒤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만큼 기존 인사제도에 대한 쇄신 작업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김원경 KT 경영지원부문 인재경영실장 상무는 “직원들의 사기와 자부심을 고취시켜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직급승진제도를 다시 도입하게 된 것”이라며 “앞으로 직원들이 비전과 자부심을 갖고 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T의 직급제 부활에 대해 재계에선 KT의 삼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황창규식 경영의 연장선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면에는 삼성전자 출신인 황 회장이 KT에 삼성식 인사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조처란 설명이다.
올해 초 취임 한 황 회장은 전임인 이석채 회장의 색을 지우고 KT를 ‘삼성식’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시도했다. 핵심 보직에 삼성 출신들을 중용하는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삼성의 미래전략실을 벤치마킹한 ‘미래융합전략실’이란 컨트롤타워를 신설했다. ‘싱글KT’를 외치며 삼성처럼 모든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도 드러냈다.
KT의 한 관계자는 “황 회장은 취임 당시부터 매니저라는 호칭을 싫어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황 회장은 “위아래도 없이 매니저가 뭐냐”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KT의 직급제 시행은 직원들에게까지 책임 경영 의무를 확대한 것”이라며 “KT에도 삼성과 같은 신상필벌에 기반을 둔 성과주의 인사가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직급제 시행으로 매니저라는 호칭을 없애는 대신 사원과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기존 직급을 다시 도입한다. 연구개발(R&D) 분야 직원의 경우 연구원과 전임연구원,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수석연구원이란 호칭으로 부르게 된다.
KT는 성과에 따라 지급하던 연봉 체계도 개편했다. 이에 따라 기존 4단계였던 연봉체계는 직급체계에 맞게 5단계로 세분화된다. 임금은 직급과 업무 성과를 모두 반영해 직급별로 설정된 일정 범위 내에서 지급된다. 직급이 오를 때마다 임금이 오르는 만큼 실질적 임금인상효과가 날 것으로 보인다.
KT는 직급별 전문성과 리더십 등 역량을 키우는 데 필요한 기간을 고려해 직급별로 승진에 필요한 최소 소요 기간을 3~4년으로 정했다. KT 신입사원은 입사 후 최소 14년 만에 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다만 능력 있는 인재 발굴을 위해 별도로 발탁승진제도를 운영해 최소 기간을 채우지 않아도 탁월한 역량을 가진 직원을 승진시킬 계획이다.
한편 KT는 이날 직급제 시행과 함께 징계를 받았던 직원들에 대한 사면조치도 발표했다. 그동안 영업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회사 규정을 어겨 KT 윤리경영실로부터 징계를 받았던 임직원 100여명의 징계기록을 없애기로 했다.
KT의 다른 관계자는 “영업을 하다보면 경쟁사와 판촉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해진 판촉비를 넘기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며 “이번 사면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 대부분이 사면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