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이 금융감독원의 파생상품(DLF) 손실사태 제재심의위원회 결과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의 1심 재판결과를 곧 받아들게 된다.
이번 판결은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와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앞으로 금융회사 CEO 징계 등 사모펀드 손실사태 후속조치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왼쪽)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하나은행 사모펀드 손실사태와 관련한 2차 제재심의위가 손 회장 선고공판 등 일정을 고려해 9월 개최된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논리를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손태승 회장의 파생상품사태 중징계 취소소송 1심 선고공판을 20일에서 27일로 미뤘다.
손 회장 재판결과가 다른 금융회사와 CEO 징계, 금융당국의 향후 정책적 방향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론을 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도 법원의 판단이 향후 여러 건의 사모펀드 손실사태와 관련해 금융회사와 CEO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법원에서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준다면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사태를 이유로 금융회사 CEO에 중징계를 내릴 만한 당위성이 사실상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손 회장 측은 금감원이 금융회사 CEO의 내부통제 의무를 근거로 들어 금융상품 손실사태에 CEO를 징계하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1심 재판에서 손 회장이 승소한다면 고승범 내정자가 금융위원장에 오른 뒤 라임펀드 등 사모펀드 손실사태에 연루된 증권사 CEO들의 징계안을 의결하지 않고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대신증권 대표를 맡던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KB증권
박정림 대표와
김성현 대표,
윤경은 전 대표 등이 해당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부터 제재심의위를 열고 해당 CEO들에 중징계를 결정했지만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금융위에서 징계안을 정식으로 의결하지 않고 시기를 계속 미루고 있다.
금융위가 손 회장 재판결과를 보고 징계 의결 여부를 판단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손 회장 파생상품 손실사태와 관련한 금감원 중징계는 지난해 3월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확정됐는데 손 회장은 이런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금융위가 이런 상황에서 다른 CEO 징계안 의결을 강행한다면 이들도 비슷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법적 대응과 여론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손 회장이 승소한다면 자연히 다른 금융회사 CEO 제재도 무효화될 가능성이 크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도 손 회장과 같은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라 같은 재판결과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에서 손 회장이 승소할 경우 항소를 제기할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손 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대상은 금융당국이 아닌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지만 금융당국이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후속 대응조치를 논의할 공산이 크다.
금융당국은 소송전을 장기화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 차원의 대응에 논란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항소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정은보 금감원장이 취임하며 금융회사와 CEO를 상대로 사후 제재에 힘쓰기보다 사모펀드 사태와 같은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점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정 원장은 6일 취임사에서 “사후적 제재에만 의존하는 감독방식은 금융권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소비자 보호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체제에서 논란이 됐던 강력한 사후 제재조치와 관련해 부정적 시각을 내비친 만큼 금융회사 및 CEO 제재를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고승범 내정자도 금융위와 금감원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며 금감원과 최대한 비슷한 정책 방향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손 회장이 이번에 패소하더라도 금융위에서 다른 금융회사와 CEO 제재 안건을 의결하지 않거나 징계수위를 낮춰 의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 수장이 모두 교체되는 만큼 이전 체제에서 이뤄진 정책적 기조와 방향을 바꿔 금융회사들과 원활한 관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우선순위로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사태 대응과 관련해 정부가 금융회사 경영에 개입하는 ‘관치금융’ 논란도 커졌던 만큼 고 내정자와 정 원장은 모두 이런 논란을 되풀이하지 않는 데 신경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