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감사원이 서울시의 도시첨단물류단지사업 인허가 지연문제를 놓고 하림그룹의 손을 들어 줬지만 개발에 필요한 서울시의 협조를 얻기 위해 김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감사원은 양재동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 인허가 과정과 관련해 서울시에 공익감사를 진행한 결과 서울시가 부적절하게 업무를 처리해 혼선을 초래했다며 서울시에 주의조치를 내렸다.
다만 감사원의 주의조치에도 도시첨단물류산업단지 부지 개발의 인허가권한이 여전히 서울시에 있는 만큼 인허가 지연의 명분이 됐던 쟁점을 해결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양재동 도시첨단물류단지는 김 회장의 종합식품기업 비전을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로 여겨진다. 그런 만큼 서울시와 협의를 원만하게 진행해 사업 착수시점을 앞당기는 일이 중요하다.
김 회장이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가정간편식(HMR)사업이 올해 하반기 본격적 생산과 영업을 앞두고 있다. 김 회장으로선 가정간편식 제품의 수도권 공급기지가 될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
김 회장은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계획을 준비하면서 "하림은 곡물부터 사육과 가공, 유통 등 식품의 가치사슬 전체 과정을 철저히 관리해 신선하고 안전하며 균형잡힌 영양을 공급하는 식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도계가공시설과 종합식품단지, 최첨단 육가공공장에 이어 도시첨단물류단지까지 건립해 식품산업에서 전체 가치사슬을 모두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가정간편식 관련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시험가동에 들어가면서 올해부터 상업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도시첨단물류단지가 들어설 기존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는 수도권 가까이 있어 접근성과 활용도를 감안할 때 부가가치가 높고 물류거점으로서 역할에 기대가 크다”고 바라봤다.
하지만 서울시는 하림그룹이 2020년 8월 제출한 2차 투자의향서를 놓고 용적률 문제와 극심한 교통혼잡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들어 개발계획을 반대했다.
서울시는 우선 하림그룹의 도시첨단물류단지 사업계획에서 용적률이 과도하게 산정됐다고 지적했다.
하림그룹은 용적률 800%를 적용해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이를 놓고 서울시는 도시첨단물류단지 용적률이 주변 지구단위와 비교하면 특혜에 가깝다며 반대해왔다.
인근 부지 용적률은 400% 이내로 관리되고 있어 하림그룹의 도시첨단물류단지에만 용적률을 2배로 높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에 따라 인근 지역에 극심한 교통혼잡도 예상된다는 점도 인허가 지연의 주요 명분으로 꼽혔다.
하림그룹이 개발하려는 부지는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근처에 있어 물류단지가 조성되면 교통체증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또 도시첨단물류단지가 들어설 부지는 140만㎡로 현대자동차그룹이 추진한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개발부지의 1.54배에 이른다. 하지만 인근 지역의 대중교통 여건은 열악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림그룹의 도시첨단물류단지 부지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시내버스 1개 노선과 마을버스 1개 노선, 1km 떨어진 곳에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 단 하나에 그친다.
서울시에 따르면 도시첨단물류단지와 비슷한 대규모 개발사업은 사업자가 교통에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공공 기여도를 높이는 데 비용을 투입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개발하며 용적률 783.2%를 적용하고 1조7491억 원을 교통개선대책 등 공공기여금에 투입했다. 롯데그룹이 추진한 제2롯데월드는 80만㎡ 규모에 용적률 573.2%를 적용하고 교통개선대책 비용으로 약 4518억 원을 내놨다.
제2차 투자의향서에서 하림그룹은 3659억 원을 공공기여금으로 쓰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대차와 롯데그룹보다 부지규모도 더 크고 용적률도 더 높게 적용받는데도 더 적은 금액을 내는 것이다.
이에 실제 개발규모에 부합하는 적정 수준의 공공기여금이 재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하림그룹은 도시첨단물류단지에 따른 6가지 공익가치를 들며 부지 개발 자체에 공공 기여도가 반영됐다고 주장한다.
하림그룹은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를 개발·운영할 때 배송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100% 재활용하며 택배종사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일터를 조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물류와 첨단 융복합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농촌과 도시, 중소기업의 상생발전 가교 역할을 맡겠다는 명분도 내걸었다. 상업시설과 문화시설, 공동주택도 들어서 도시 인프라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아직 서울시가 기존 입장과 기준을 어떻게 바꿀 지 몰라 협의방향을 설정하지 못했다"며 "최대 용적률 800%를 적용한다 해도 개발수익을 크게 기대할 수 없지만 법적 근거에 따라 서울시와 적극적으로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이 하림그룹 비전뿐 아니라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점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통상의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은 국가단위 사업으로 국토교통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생활물류는 폭증했지만 그에 맞는 물류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기준으로 2020년 기준 택배물량은 11억8천만 박스로 2016년과 비교해 64%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로 들어오는 화물차량도 10% 늘었다.
특히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안으로 배송되는 택배물량이 분류작업을 위해 경기도에 있는 물류단지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이동거리가 하루평균 4만km로 집계됐다. 이를 1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오염물질이 90톤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림그룹은 “도시첨단물류단지는 도시의 여러 문제들을 해소하고 서울시의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급하게 필요한 인프라"라며 "사업 추진에도 6대 기본구상을 바탕으로 법령과 절차에 따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감사원의 주의 요구로 하림이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계획을 서울시에 다시 제출하면 서울시는 6개월 안으로 하림에 인허가 검토사항을 다시 통보해야 한다.
식품업계에서는 하림그룹이 이번에도 서울시와 합의가 원만하게 되지 않으면 손해배상소송까지 검토할 것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그러나 하림그룹 관계자는 “소송은 준비하고 있지 않고 있다”며 “최대한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정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