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HMM을 매각하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시장의 관심은 이미 새 주인에게 가 있다.
‘우리가 HMM을 인수하겠다!’라는 기업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시장에서는 인수 후보자를 저마다 추측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수후보자로 언급되는 기업들은 포스코그룹, 현대자동차그룹, SM그룹 등이다.
HMM 인수전의 향방을 추측하는 것은 대부분 인수후보자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이 HMM을 인수하려고 할 것이라는 추측에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이야기가 같이 나오는 식이다.
하지만 ‘어떤 주인이 올까’는 피인수기업에서도 매우 궁금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기업이 주인으로 와야 HMM의 사업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까?
◆ HMM에게 좋은 주인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HMM의 사업이 계속해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글로벌 해운 춘추전국시대에 HMM의 생존을 담보해줄 수 있는 지속적 투자다.
HMM의 주력사업인 컨테이너사업은 규모의 경제가 매우 크게 작용하는 사업이다. 그래서 글로벌 대형해운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 새 선박 발주와 인수합병에 매우 큰 공을 들이고 있다.
HMM 역시 컨테이너사업을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글로벌 해운사들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는 사업비중의 조절이다. 2021년 1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HMM의 매출비중은 컨테이너 93.1%, 벌크 5.3%, 기타(터미널 운영 등) 1.6% 등이다.
하지만 컨테이너사업은 글로벌 경기변동에 매우 민감한 사업이다. 컨테이너 운임지수를 살펴보면 컨테이나서업의 이런 특성이 매우 잘 드러난다.
HMM이 길고 긴 적자의 늪에 빠져있던 2020년 4월, 대표적 컨테이너 운임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800대에서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 7월 기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무려 4천대다. HMM이 지금 소위 ‘잘 나가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사실인 한편 HMM의 실적이 얼마나 외부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는지도 알 수 있는 지표기도 하다.
이런 컨테이너사업의 변동성을 조금이나마 완화해줄 수 있는 사업이 바로 벌크사업이다. 벌크사업은 주로 장기용선계약을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컨테이너 사업과 비교해서 경기변동의 영향을 조금 적게 받는다.
이런 이유로 HMM은 계속해서 벌크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최근 GS칼텍스와 10년 동안 약 6300억 원 규모의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배재훈 사장은 올해 3월 열린 HMM 주주총회에서 “벌크 부문에서 전략 화주를 영업기반으로 삼아 원가 경쟁력 있는 선대를 구축하고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수익성 개선에 힘을 쏟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 키워드는 ‘해운업 경영경험’이다.
해운업은 특수성이 매우 강한 사업이다. 실제로 배재훈 사장이 취임하기 전, 유창근 전 사장의 교체설이 슬슬 돌던 때 해운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던 일이 바로 해운업을 모르는 재무 전문가가 HMM, 당시 현대상선의 사장으로 오는 것이었다. 이 우려는 ‘물류 전문가’인 배재훈 사장이 취임하면서 잦아들었다. 해운회사를 경영하는 데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 세 가지 키워드, 바로 ‘지속적 투자’, ‘벌크사업 확대’, ‘해운업 경영경험’을 놓고 HMM의 관점에서 과연 어떤 주인이 와야 HMM의 사업이 뻗어나갈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 ‘물류기업’ 강하게 원하던 포스코, 하지만 해운업 경험은 ‘전무’
포스코가 올해 초 HMM을 인수한다는 말이 나왔다가 산업은행과 포스코가 둘 다 부인하며 일단락이 됐다. 하지만 최근 HMM 매각설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며 강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HMM이 포스코에 인수된다면, HMM의 관점에서는 세 가지 키워드 가운데 어떤 쪽으로 가장 이득이 있을까?
바로 벌크사업이다.
애초에 포스코가 인수설을 한번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포스코가 인수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바로 포스코의 사업과 HMM의 사업 사이 시너지가 매우 크다고 시장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회사고 철강은 바로 벌크해운을 통해 세계로 수출된다. HMM을 인수한다면 포스코로서는 안정적 물류망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한 HMM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포스코의 철강 수출을 HMM이 책임지게 된다면 HMM의 벌크사업 확대가 확실하게 추진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HMM의 컨테이너사업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포스코의 철강 수출을 HMM이 전담하더라도 내부거래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적다.
첫 번째 키워드였던 지속적 투자문제와 관련해서도 포스코는 HMM에게 좋은 주인이 될 수 있다. 2021년 1분기 보고서 기준, 포스코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모두 4조5천억 원 수준이며 부채비율 역시 68.2%로 매우 양호하다.
심지어 올해 2분기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2조2천억 원인데 이는 역대 최대수준이다. 2020년 2분기보다 무려 1200%가 오른 것이다. 부채비율 역시 1분기보다 4.2%포인트 낮아졌다. 투자를 위한 ‘실탄’은 충분한 셈이다.
문제는 세 번째 키워드, 해운업 경험이다. 포스코는 해운업, 물류업과 아예 관계가 없는 그룹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해운업은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의 존재, 환경규제, 노선운용 등의 특수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여러 산업분야 가운데서도 특히나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산업이다.
특히 각 해운동맹마다 해운사들이 선복 공유 등을 통해 매우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일종의 ‘외교력’ 역시 중요하다.
실제로 HMM이 매우 좋은 조건으로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해운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던 유창근 전 사장의 힘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전문가를 발탁하고 조언을 구하는 방법을 통해 극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굵직굵직한 투자결정 등은 그룹 차원에서 내려진다는 것을 살피면 해운업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그룹과 비교해 포스코의 약점이 될 수 있다.
◆ ‘현대글로비스’ 버티고 있는 현대차그룹, 자금력 압도적이지만 모빌리티 투자에도 바빠
다음은 현대차그룹이다.
먼저 포스코그룹과 비슷하게 현대차그룹 역시 현대차와 기아차의 자동차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HMM이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다. 안정적 화주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HMM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대차가 현대글로비스라는 해운사를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포스코보다는 조금 장점이 희석될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미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수출을 물류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그룹 내에서 HMM과 역할이 겹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현대글로비스가 끊임없이 내부거래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HMM이 그 문제를 해소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이 아니라 HMM의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코보다는 사업적 시너지가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에는 모든 인수후보를 압도하는 장점이 있다. 바로 자금력이다.
현대차그룹은 한국 재계순위 2위의 기업이다. 그 위상에 걸맞게 2021년 1분기 보고서 기준 현대차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무려 11조 원에 이른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을 모두 합친다면 이는 훨씬 더 거대해진다.
글로벌 해운시장의 상황을 보더라도 현대차그룹은 존재 자체만으로 HMM에게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
컨테이너사업은 외부환경 변화에 굉장히 민감한 사업이기 때문에 현재의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다. 또한 머스크, MSC같은 대규모 글로벌 해운사들이 다시 치킨게임을 시작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을 살피면 현대차 그룹의 자금력은 HMM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예전처럼 주저앉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문제는 HMM을 현대차그룹이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룹 차원의 지원이 어느정도 들어올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룹이 그 돈을 HMM에 쓸 생각이 없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현대차그룹은 지금 미래 모빌리티시장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그룹 전체의 역량을 모아나가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진행한 CEO인베스터데이에서 현대차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중장기 투자금액을 60조1천억 원이라고 밝혔다. 기아차 역시 올해 2월에 열린 CEO인베스터데이에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29조 원을 자동차사업 역량 강화와 미래모빌리티사업 투자에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룹의 모든 역량을 미래 모빌리티에 걸고 있기 때문에 HMM을 인수하더라도 해운업 투자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해운그룹 꿈꾸고 경험도 풍부한 SM그룹, 문제는 ‘승자의 저주’와 쌍용차
마지막으로 SM그룹이다.
HMM의 관점에서 봤을 때 SM그룹에 인수됐을 때의 최고 장점은 SM그룹이 대한해운, SM상선, 대한상선 등 해운사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그룹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가운데 SM상선은 HMM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둘 밖에 없는 장거리 컨테이너선사이기도 하다.
SM그룹은 단순히 해운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룹을 넘어, 오너인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당장 해운업 확대 의지를 굉장히 강하게 내비치고 있는 그룹이다.
우 회장은 2020년 1월 열린 대한해운의 아시아 최초 액화천연가스 연료주입(LNG 벙커링) 전용선 명명식에서 “정부와 기업의 끊임없는 도전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도 머지않아 해양강국으로 거듭나리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다”며 “SM그룹은 이 험난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HMM이 SM그룹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룹 차원의 매우 강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SM그룹이 해운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장점은 단순히 ‘경험’에서 끝나지 않는다.
SM그룹이 HMM을 인수한다면 SM그룹의 해운산업이 HMM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과정에서 SM그룹과 HMM의 자산이 결합하며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규모의 경제 때문에 해운시장에서는 끊임없이 SM상선과 HMM의 합병을 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오곤 했었다.
문제는 역시 SM그룹의 자금력이다.
시장에서는 SM그룹의 보유현금을 약 1조 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HMM의 가격은 약 4조 원~5조 원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SM그룹에게 HMM은 너무 커다란 매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재무적투자자(FI) 등과 함께 HMM의 인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과연 HMM의 컨테이너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자칫하다간 ‘승자의 저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SM그룹이 HMM을 인수할 의향이 만약 있다면 현재 SM그룹이 참여를 선언한 쌍용차 인수전의 향방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SM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SM그룹이 추가적 인수합병(M&A)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쌍용차 인수가 무산된다면 SM상선의 기업공개 자금 등을 활용해 SM그룹이 더욱 적극적으로 HMM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 HMM이 떠앉고 있는 해운재건의 길, HMM은 과연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HMM은 망해서는 안 되는 기업이다."
몇 년 전 HMM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국민의 돈으로 살려낸 기업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우리나라 특성상 원양 컨테이너선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HMM은 아직 매물로 나오지도 않은 기업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매물로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한 기업이기도 하다.
과연 ‘망해서는 안 되는 기업’, 과연 HMM이 훗날 좋은 주인을 만나 한국 해운을 영광의 길로 이끌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채널Who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