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총장은 이날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만난 뒤 기자들에게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검찰 수사권 박탈이 백운규 산자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계기로 해서 이뤄졌다. 그래서 더 이상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다고 판단해 나왔다"며 "지금 정치에 참여한 계기가 된 것 역시 월성원전사건과 정부 탈원전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6월29일 정치활동을 공식화하면서 '약탈정권'이라 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다. 상징성이 클 수밖에 없는 첫 민생행보도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중소상인 등이 아니라 탈원전정책 쪽으로 잡았다.
윤 전 총장 전날인 4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미군 점령군 발언'을 정조준했다. 내년 대선의 양강구도를 이루는 이 지사를 향한 사실상 첫 발언이라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집권세력의 차기 유력후보 이재명 지사가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이어 받았다”며 “이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고 적었다.
이재명 지사의 발언을 공격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연결짓고 있다. '기승전-반문재인'인 셈이다.
반문재인 깃발은 높이 들었지만 대선 승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
윤 전 총장이 '보수 본색'을 드러내면서 중도 확장성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3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SBS프로그램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의 이 지사 비판을 두고 “윤 전 총장이 압도적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중도와 탈진보까지 엮겠다는 표현을 썼다"며 "얼마나 중도로 가느냐 했는데 지난번 정치참여 선언과 기자회견, 이 지사와 역사논쟁으로 중도로 나아가기는 이제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윤 전 총장의 반문재인 깃발을 놓고 다른 깃발이 없기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선거의 승자는 사실상 '스윙보터' 즉 중도층이 결정한다. 30% 수준의 보수, 진보층이 양쪽에서 버티고 있지만 이들이 승자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중도 확장성이 결정적인 이유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3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정권교체 의지를 넘어서는 ‘알파’일 텐데 그 알파를 보여주지는 않았다"며 "최소한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상이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의 중도층과 2030세대가 강하게 원하는 것은 미래 비전이다”며 “윤 전 총장은 적어도 출마선언에서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중도층과 2030세대가 집권여당에 등을 돌린 가장 큰 이유로 부동산 문제와 일자리 문제가 꼽힌다. 유권자들은 내년 대선에서는 부동산 문제나 청년 실업 등 민생 현안에 관한 해법과 대안을 목말라한다는 게 정치권 일반의 분석이다.
윤 전 총장은 반문재인 깃발은 '아직도 검사'라서 그렇다는 진단도 나온다.
1994년 대구지검 검사 임관 뒤 25년 넘게 검사로만 있으면서 공격에 익숙할 뿐 미래, 창조, 비전, 시대정신 등에는 보여줄 게 없다는 것이다. '특수검사'인 윤 전 총장이 '공안검사'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의 길을 걸어간다는 말까지 정치권에서 나온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관훈클럽 토론에서 윤 전 총장의 이 지사 비판을 두고 "윤 전 총장의 콘텐츠 없음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며 "장모 사건이 터지고 하니까 갑자기 공안검사 시대로 돌아가는지 다시 탄핵과 태극기의 강으로 돌아가는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그동안 누려왔던 높은 지지율은 보수층과 일부 중도층 사이에 충만한 반문재인 정서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대선 일정이 본격화하면 유권자들은 윤 전 총장에게 '미래'를 물을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4일 페이스북에서 윤 전 총장을 겨냥해 “국정이란 것이 20∼30권 사법고시와 달리 영역과 분량이 방대해 공부할 것이 참 많다. 열심히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며 “저도 계속 공부 중이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공부하려는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적었다. 윤 전 총장의 콘텐츠 부족을 비꼰 것이다.
윤 전 총장 스스로도 이를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정치참여 선언 다음날인 6월30일 국회를 찾은 뒤 정책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어제는 제가 국민께 정치에 나서는 제 생각과 포부, 계획을 말씀드린 거고 구체적 정책에 관해서 어제 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었다”며 “국민들께 불편하지 않고 많은 문제점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유권자들은 지켜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