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통제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없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위원이자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한 말이다.
한국정치도 민주화 뒤 대략 10년 정도 주기로 유권자들의 심판 아래에 정권이 교체됐다. 달리 말하면 유권자들이 집권여당에게 한 번씩 더 기회를 준 것이다.
현재 정치권 일각에서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4·7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야당의 이준석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청년층의 민심이반이 보여 더욱 뼈아프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까? 아니면 최초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까?
■ 방송 : 이슈톡톡
■ 진행 : 곽보현 부국장
■ 출연 : 성보미 기자
◆ 노무현과 박근혜는 어떻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나
곽: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노무현
박근혜 두 전 대통령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인물 모두 유권자들의 개혁심리를 만족시켰다는 것입니다.
집권여당에 소속된 의원이긴 하지만 현직 대통령과 주류세력과는 다른 색깔을 보이면서 정권교체에 가까운 기대감을 준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경선 전 지지율 2%에 그친 고졸 영남출신의 비주류 인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세였던 이인제 후보나 한화갑 후보 모두를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역전하면서 ‘DJ(김대중)의 후계자’로 인정받습니다.
5공 청문회에서 거침없는 발언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행보가 엘리트 보수인 이회창 후보를 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준 것입니다.
게다가 ‘세종시 수도 이전’이라는 파격적 정책을 내걸며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 민심을 잡아 이회창 후보를 꺾습니다.
성: 당시 경쟁자였던 이회창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중도보수층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노무현 후보 측이 내세운 귀족과 서민,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이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능력 부족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곽: 그렇다면 다른 성공사례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땠나요?
성:
박근혜 전 대통령도 ‘여당 내 야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른 색깔을 낸 인물이었습니다.
온건보수인 친이명박계와 대립하며 정반대 행보를 보였습니다. 기존에 박 전 대통령이 지니고 있던 ‘박정희 후광’에 더해 시너지를 낸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행정도시의 이전 백지화 법안에 반대해 부결시키면서 충청권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당내 경선이 시작된 첫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며 국민 대통합의 길을 열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당시 기존 보수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행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합니다.
게다가 김종인이라는 인물을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해 대기업•중소기업 상생과 공정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등을 통해 ‘친재벌 시장만능 정당’ 이미지를 보인 것과 달리 보다 민주적 시스템으로 개혁하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곽: 노무현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집권여당과 다른 자기만의 색깔로 중도층의 민심을 잡은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노무현과
박근혜 두 전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점에는 당시 집권당과 대통령의 실책이 정권심판까지 이어질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두 인물 모두 아슬아슬한 득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지지기반의 큰 이반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와 57만 표가량 차이가 났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도
문재인 당시 후보보다 100만 표가량 앞섰습니다.
◆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정동영 홍준표, 정권심판론 낳은 집권당의 결정적 실책
성: 반대로 정권교체 국면에서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는 1위 당선자와 2위 낙선자의 표 차이가 모두 500만 표를 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은 대통령이 누가 될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지지기반 이반현상이 크게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는 국정농단 사태로 치러진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인용 결정을 8대 0이란 만장일치의 결정으러 내리면서 집권여당은 지지기반이 붕괴됐으며 정권교체의 명분을 명백히 했습니다.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은 높게 점쳐졌습니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집값 폭등에 따른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확실한 실책이 존재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지지율이 12%까지 떨어지며 열린우리당을 향한 민심은 크게 이반했습니다.
게다가 다음 대선주자마저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상대 후보였던 이 전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국민 성공시대’를 강조하며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목말랐던 유권자의 마음을 잘 공감해 정권 교체의 열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에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당시 후보보다 지지율이 2배 넘게 뒤처지면서 반등의 기회를 끝내 잡지 못하고 정권을 내주고 맙니다.
◆ 민주당, 정권 재창출 위한 돌파구 있을까
곽: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면 과거 정권교체기와 좀 달라 보입니다. 압도적 지지율 격차가 나타나면서 정권교체가 분명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대 정부의 임기 4년차 4분기 지지율을 놓고 비교해 보면
문재인 정부는 정권교체보다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정부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를 보면
문재인 38%, 이명박 32%, 김대중 31%, 노무현·
박근혜 각각 12%로 나타납니다.
성: 하지만 낙관하긴 이릅니다.
정치권에서는 2022년 대선은 51대 49 경쟁구도로 팽팽한 접전이 치러질 것으로 내다봅니다.
이럴수록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중도층과 청년층에 시선이 몰리게 됩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KBS 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결국 내년 3월 대선의 핵심은 누가 중도층과 청년세대의 지지를 더 많이 이끌어오느냐에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4·7재보궐선거와 야당의 이준석 현상에서 청년층의 민심이반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어 민주당으로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6월21일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내놓은 6월3주차 정당지지도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39.7%, 더불어민주당 29.4%로 나타납니다. 국민의힘은 국정농단 뒤 최고치를 찍은 것입니다.
당시 20대 응답자 가운데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비율은 41.9%로 평균을 웃돌았으며 반대로 민주당은 20대 지지비율이 21.3%에 그쳤습니다.
곽: 앞의 성공사례에서 분석했듯이 대선주자가 유권자들의 개혁심리를 만족시킬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해 보입니다.
우선
이재명 경기지사가
문재인 정부와 일부 차별을 두며 기본시리즈 등을 통해 독자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
다만 이 지사가 경제·민생 이슈와 관련해 당면한 문제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최근 KBS프로그램 ‘사사건건’에 출연해 이런 분석을 내놨습니다.
“지금 다음에 대통령이 돼야 할 분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디지털화와 4차산업 등 이런 경제·사회구조의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느냐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서민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준 점이 내년 대선에도 반복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실질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뭐라는 것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지니지 않고는 어렵다.”
김 전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이재명 지사가 민생 이슈를 잘 선점했다고 평가했고 “이 지사가 지금 민주당에서 대선 준비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이다. 기본소득 문제가 내년 대선에서 하나의 핫이슈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성: 하지만 섣불리 이 지사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요인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지사를 부각시킬 극적 요소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51대 49 구도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대선주자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킬 이벤트효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앞서 전당대회가 이준석 돌풍에 힘입어 흥행하면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상승가도를 타고 국정농단 뒤 최고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벤트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셈입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KBS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정치가 갖춰야 할 조건 가운데 하나가 드라마적(극적) 요소다"며 "이걸 고려해보면 현재 보수진영에게 좀 유리하게 대선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이벤트효과가 아무래도 진보진영보다는 보수진영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보수진영에서 다양한 색깔을 지닌 주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당 밖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안철수 대표 등이 있습니다.
당에는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지사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오세훈 서울시장도 차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시선도 나옵니다.
곽: 게다가 경선흥행을 위한 언더독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출마 처음부터 1위를 달리는 유력후보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경선을 놓고 ‘각본없는 16부작 정치드라마’로 평가할 만큼 민주당의 경선은 대흥행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한화갑·이인제 당시 후보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지사는 현재 민주당에서 독보적 1위를 달리는 유력 대선주자입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KBS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서 "
이재명 지사는 비주류, 아웃사이더, 언더독이다"며 "지금 민주당이 가장 좋은 그림은 이낙연 후보가 한 25%쯤 1등으로 달리고
이재명 후보가 10~15% 정도로 2등으로 쫓아가고 있다가 경선에서 극적으로 꺾으면 이게 바람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재명 지사가 지난해 일찍 1등으로 올라왔고 이낙연 후보가 너무 일찍 무너지는 바람에 이 지사가 1등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다"고 짚었습니다.
성: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이 지사는 경선 흥행보다는 민주당 대선주자로 빨리 등판하는 것이 낫다는 말도 나옵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현재 민주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이재명 경기지사를 대선주자로 빨리 확정시킨 뒤 정책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상대편인
문재인 당시 후보보다 먼저 등판한 뒤 지지세력 확장에 힘쓰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당시 대통합 행보를 내세우며 호남 출신의 동교동계를 포섭하고 선진통일당과 합당하며 이회창 전 대선후보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덕분에 민주화 뒤 대선에서 최초로 과반의 득표율로 당성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웁니다.
곽: 지금까지 민주당이 5년 더 집권하기 위해서 과거 성공과 실패사례를 통해 어떤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여야 모두 대선 경선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앞으로도 채널Who에서는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중요한 이슈들을 따라가면서 분석해 보는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