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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호 행장은 왜 물러서지 않을까

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 2014-06-02 18: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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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호 행장은 왜 물러서지 않을까  
▲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왼쪽)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오른쪽)

KB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에서 이건호 행장이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은행 이사회는 지난달 31일 새벽까지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해 어떤 결론을 내지 못하고 금융감독원 감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두 보류하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 휴전이지만 이사회 과정을 보면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진 것이다.

이 행장은 이사회에 앞서 연 경영협의회에서 시스템 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절충안을 결의했고 이사회에 이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사회 다수를 차지한 사외이사는 이 요구안도 거부했다.

그러자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위원은 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먼저 풀어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정 감사와 사외이사들은 회의장 책상을 두들기며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분위기가 급격히 나빠지자 이 행장은 이사회 중간에 사외이사들을 모아 1시간이 넘도록 번외 회의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중재안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속개된 이사회가 끝날 즈음엔 고성을 지르며 회의장 밖으로 뛰쳐나간 이사가 나올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극한 대립이 계속됐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전산시스템 교체는) 이사회에서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에 은행장이 현명하게 해결하리라고 본다”며 사실상 이 행장이 물러설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이 행장은 전산시스템 교체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 서로 다른 배경이 극한 충돌 불러

이번 사태가 사실상 이 행장과 임 회장의 주도권 다툼이라고 보고 시각이 우세하다. 이 행장 취임 초기부터 임 회장과 불화설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두 사람의 배경과 출신 차이다.

이 행장과 임 회장은 모두 정부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국민은행 외부인사라는 점도 똑같다. 그러나 임 회장이 경제부처에서 주로 일했다면 이 행장은 금융연구원 등에서 실무경력을 쌓았다.

임 회장은 1977년 총무처 행정사무관이 된 뒤 30년 이상 경제 부처에서 경력을 쌓았다. 대통령비서실 SOC투자기획단,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자금시장과장 등 재무부 주요 보직을 거쳤다. 2006년 재정경제부 차관보로 승진한 뒤 다음해 재정부 제2차관에 이르렀다. 경제관료 출신이라 2010년 KB금융지주 사장으로 선임됐을 때 ‘관치금융’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행장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장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일했다. 1999년부터 4년간 조흥은행 부행장으로 일하면서 금융분야 실무를 배우기도 했다. 그는 2011년 리스크 관리 부행장으로 국민은행에 합류했다. 그는 비교적 짧은 은행경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7월 국민은행장에 올랐다.

이 행장은 취임 초기부터 임 회장과 불화설이 나돌았다. 국민은행이 KB금융지주 수익 90%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에서 임 회장과 이 행장 간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기 쉬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둘 다 외부 인사이지만 두 사람의 배경이 지나치게 달랐다. 둘 다 국민은행 출신 인사가 아니므로 내부에서 문제를 조율하기도 쉽지 않다.

기업지배구조원의 한 연구원도 “전반적으로 외부에서 추천을 받아 오는 사람은 회사사정이나 기업문화 등을 고려하는 부분이 부족하다”며 “아무래도 외부인사는 추천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임명된 경제부처 인사지만 이 행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중용된 금융연구원 출신임을 지적한 말이다.

◆ 임영록의 국민은행 지배에 이건호 ‘발끈’

이 행장이 임 회장이 국민은행 경영에 지나치게 관여한다고 생각해 반기를 들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지주회사법 41조의 4항(완전 자회사 등의 지배구조 특례)에 따르면 완전 자회사는 별도 사외이사나 감사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했다. 100% 자회사는 경제적인 면에서 지주회사와 사실상 같은 법인이어서 의사결정기구를 2개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적용될 경우 KB금융지주는 국민은행 지분을 100% 보유하므로 별도 사외이사를 두지 않아도 됐다.

다만 KB금융지주는 이 특례를 따르지 않아 국민은행은 별도로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국민은행에서 고객정보 유출 등의 사고가 났을 때 이사회가 없다면 금융지주가 책임을 모두 져야 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런 구조에서 KB금융지주는 사외이사를 통해 국민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한다. 현재 KB금융지주는 국민은행 지분을 100% 소유했다. 임 회장이 국민은행 사외이사 임명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임 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은행 사외이사를 5명 교체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임 회장의 동문이거나 학교 교수 등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사회 운영도 KB금융지주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했다. 국민은행을 장악하려는 임 회장의 이런 움직임이 이 행장을 발끈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이 사실상 임 회장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며 “전산시스템 교체를 계기로 이 행장이 임 회장에게 확실하게 반기를 들어 국민은행에 관한 한 일정 수준의 자율권을 획득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 배임 우려에 대한 이건호의 소신

이 행장이 훗날 생길지도 모르는 배임혐의를 피하기 위해 이사회에 시스템 교체 관련 이의를 냈다는 분석도 있다.

  이건호 행장은 왜 물러서지 않을까  
▲ 셜리 위 추이 한국IBM 대표
이번 사태의 시작은 국민은행 주 전산시스템을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교체하기로 한 이사회의 결정이다. 지난 4월24일 국민은행 이사회가 이런 결정을 내린 직후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위원은 “교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가 고의로 누락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 행장이 정 감사의 의견을 지지하면서 내분이 시작됐다.

당시 정 감사는 셜리 위 추이 한국IBM 대표가 이 행장에게 보낸 이메일을 근거로 감사보고서를 만들어 지난달 19일 이사회에 제출했다. 이메일에서 추이 대표는 유닉스 전환비용이 낮게 책정됐고 IBM 메인프레임 도입이 더 저렴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감사는 이를 근거로 유닉스 전환 관련 비용과 서류가 조작됐다고 봤다. 그러나 이사회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자 정 감사는 금감원에 특별감사를 요청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금융업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 행장이 이사회와 맞서는 이유 중 하나로 추이 대표가 가격을 대폭 내리겠다고 제의했다는 부분을 꼽고 있다. 추이 대표가 유닉스보다 1500억 원 가량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 행장으로서 전산시스템 교체로 자칫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 뒷날 배임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드러나고 IBM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했을 경우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행장이 끝내 이사회와 맞서는 쪽을 선택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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