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가 3나노급 반도체를 앞세워 대만 파운드리기업 TSMC가 특히 강세를 보이는 북미 반도체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까?
북미에는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큰 반도체기업들이 여럿 포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선두 TSMC와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북미 반도체기업들로부터 더 많은 일감을 받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TSMC와 다른 기술을 기반으로 3나노급 반도체를 차별화해 고객사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5일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에 따르면 현재 북미지역에 공급되는 시스템반도체의 68%는 TSMC에서 나온다. 반면 삼성전자의 북미 반도체 점유율은 미국업체 글로벌파운드리와 비슷한 9% 수준으로 파악된다.
현재 세계 파운드리시장에서 TSMC가 50% 이상의 점유율로 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는 북미 반도체시장에서 탄탄한 입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파운드리기업은 자체 생산시설이 없는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하는데 퀄컴, 애플, 브로드컴, AMD, 엔비디아 등 거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는 대부분 미국에 있다.
시장 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이들 미국 팹리스는 지난해 세계 전체 팹리스 매출의 64%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 1위를 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 파운드리시장 점유율은 20%에 못 미친다. 여기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의 일감을 제외하면 점유율은 더 낮아진다. 삼성전자가 북미 반도체기업에서 수주물량을 늘리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TSMC를 상대로 미국 기업의 반도체 일감을 더 차지할 수 있을지는 3나노급 반도체 공정의 양산시점인 2022년부터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3나노급 공정에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등 신기술을 적용하지만 TSMC는 기존 기술 ‘핀펫’을 유지한다.
반도체 구성요소인 트랜지스터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 채널을 통제하는 ‘게이트’로 이뤄진다. 채널과 게이트의 접촉 면적이 넓을수록 전류의 흐름을 세밀하게 제어해 전력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핀펫은 기존에 평면이었던 채널과 게이트의 접촉면을 입체화해 3면에서 만나게 하는 기술이다. 핀펫 이후에 개발된 게이트올어라운드는 채널과 게이트가 4면에서 접촉할 수 있게 한다.
삼성전자는 게이트올어라운드의 개량판인 MBCFET(다중가교채널 트랜지스터) 기술을 3나노급 공정에 적용해 채널과 게이트의 접촉면을 더 넓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트올어라운드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는 핀펫 기반 제품보다 더 나은 성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전자는 “MBCFET 공정은 최신 7나노급 핀펫 트랜지스터보다도 차지하는 공간을 45% 가량 줄일 수 있다”며 “약 50%의 소비전력 절감, 약 35%의 성능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한다.
▲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 왼쪽부터 기존 평면 구조, 핀펫,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다중가교채널 트랜지스터(MBCFET). <삼성전자> |
다만 게이트올어라운드기술이 이번에 처음 상용화에 들어가는 만큼 기존의 핀펫 기반 공정과 비교해 비용이나 수율(생산품 대비 양품 비율) 측면에서 난도가 높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반도체전문매체 세미콘덕터엔지니어링은 “게이트올어라운드는 핀펫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제공하지만 생산하기 더 어렵다”며 “몇 가지 제조상의 난점이 있고 생산비용이 높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반도체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기업 TSMC도 이런 점을 고려해 게이트올어라운드 적용을 미루는 것으로 분석된다. TSMC는 3나노급 공정 대신 2나노급 공정부터 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TSMC는 신기술의 적용 여부와 별개로 3나노급 공정에 관해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1분기 실적발표에서 2021~2023년 진행되는 1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3나노급 및 5나노급 반도체 수요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TSMC는 “3나노급, 5나노급 반도체는 크고 오래가는(large and long-lasting) 공정이 될 것이다”며 “수요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TSMC는 주요 고객인 애플을 통해 먼저 3나노급 반도체를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AMD나 인텔 등 다른 미국 반도체기업도 TSMC의 3나노급 반도체 고객사 후보군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또는 퀄컴을 통해 우선적으로 3나노급 반도체 일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3나노급 공정 대결에서 어떤 기업이 승기를 보이든 TSMC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이뤄진 파운드리시장 구조 자체는 바뀌지 않을 공산이 크다. 3나노급 공정을 비롯한 최첨단 반도체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TSMC의 설비투자 규모는 세계 파운드리 투자규모의 70%를 넘어선다”며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자본력 측면에서 경쟁사들이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