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왼쪽부터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 송인준 IMM프라이빗에쿼티 대표 |
토종 사모투자전문회사들이 약진하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가 등장한지 10년 째 접어들면서 굴리는 자금 규모만 해도 무려 45조 원에 이를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지난해 한국 인수합병시장 규모는 34조 원이었다. 글로벌 인수합병시장 전문 조사기관 머저마켓(Mergermarket)의 조사결과다. 이 가운데 사모투자전문회사가 인수 주체가 된 거래는 8조 원 수준이다. 전체 시장의 24%를 차지하는 셈이다. 물론 이 가운데 대부분이 토종 사모투자전문회사들이 주체가 된 거래다.
토종 사모투자펀드의 역사는 올해로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2004년 국내 사모투자펀드의 육성을 위해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을 개정하면서 사모투자전문회사 규정을 신설하고 제도를 도입했다.
2004년 말 미래에셋파트너스 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와 우리 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가 설립되면서 한국 사모투자전문회사의 역사가 시작됐다. 다음해 보고펀드와 MBK파트너스 등 독립 사모투자전문회사가 최초로 등장했다. 2006년 IMM프라이빗에쿼티가 IMM인베스트먼트로부터 분리됐으며 2011년 EQ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등이 설립됐다.
사모투자전문회사 제도 도입 초기 금융전업그룹이 만든 사모투자펀드가 강세를 보였지만 이후 독립 사모투자전문회사들이 위세를 확장해갔다.
독립 사모투자전문회사 중 가장 큰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는 MBK파트너스다. MBK파트너스는 현재 지난해 11월 기준 6조4천억 원 상당의 거대 자금을 운용하면서 아시아 최고 사모투자펀드로 성장했다. 설립자 김병주 회장은 미국계 사모펀드 칼라일 재직 시절 한미은행 거래로 7천억 원의 차익을 남기면서 ‘아시아의 황금 손’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MBK파트너스 뒤를 이어 보고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 한앤컴퍼니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보고펀드는 2005년 설립된 국내 최초 독립 사모투자전문회사다. 창업자 변양호 대표는 전 재정경제부 이사관 출신으로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과 은행 매각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보고펀드는 아이리버, LG실트론, 비씨카드 등을 인수하며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장악하다시피 한 국내 사모펀드 시장에서 토종 사모펀드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회사가 운용 중인 자금은 지난해 11월 기준 1조8천억 원 상당이다.
IMM프라이빗에쿼티는 출발이 늦었지만 보고펀드를 턱밑까지 추격한 상태다. IMM프라이빗에쿼티가 굴리는 지난해 11월 1조2천억 원 상당이었지만 현재 추가적인 펀딩을 통해 보고펀드의 자금 동원력을 따라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IMM프라이빗에쿼티 송인준 대표는 글로벌 회계법인 아더앤더슨, 한국종합금융, 종근당 등을 거치며 인수합병 업무 경험을 쌓았다. IMM프라이빗에쿼티는 최근 할리스커피, 교보생명, 한독약품, 포스코특수강 등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였다.
한상원 대표가 2011년 설립한 한앤컴퍼니는 신흥 강자로 부상 중이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MBA 과정을 거친 후 모건스탠리PE 한국 대표와 아시아 총괄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한앤컴퍼니는 설립 당시 테마섹 등 각국의 국부펀드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회사는 최근 웅진식품, NHN서치마케팅, 한진해운 벌그전용선 사업부문 등을 인수하는 성과를 거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사모펀드는 모두 252개에 이른다. 이들이 운용하는 자금은 45조 원을 넘는다. 2005년 말 사모펀드는 15개, 운용자금은 4조7천억 원에 불과했다. 무려 10배나 성장한 것이다.
김재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모펀드의 성장에 대해 “과거 연기금들이 주식이나 채권 등을 통해 일정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게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며 “그 자금이 사모투자펀드로 몰려 운용규모와 시장이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기업에 투자한 후 단기간에 빠지는 것이 줄었고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고 있는 점도 사모투자펀드 시장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사모투자펀드는 론스타사태 탓에 ‘먹튀 자본’으로 인식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인수합병시장에서 순기능 역할을 하면서 그 오명도 씻어내고 있다.
사모투자전문회사는 2~3년 전부터 인수합병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또 시장에 좋은 매물을 공급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인수자의 역할과 매각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투자전문회사가 주로 바이아웃(기업을 사들여 가치를 끌어올린 후 되파는 것)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시장에서 토종 사모투자전문회사들의 활약은 지난해 유독 두드러졌다. 코웨이, 네파, ING생명보험은 MBK파트너스가, 웅진식품과 한진해운 벌크전용선 사업부는 한앤컴퍼니가 인수했다. 이 밖에도 동양생명(보고펀드), 현대상선 액화천연가스 운송사업부(IMM프라이빅에쿼티) 등이 사모투자전문회사 손에 들어갔다.
정부가 최근 인수합병시장 활성화를 위해 사모투자펀드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기로 하면서 향후 토종 사모투자펀드의 성장속도가 빨라 질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3월 “40조 원 규모인 국내 인수합병시장 규모를 오는 2017년까지 70조 원대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
|
|
▲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
현 부총리가 발표한 ‘인수합병 활성화 방안’에 국내 사모투자펀드에게 기존 주식인수 방식 외에 영업양수방식의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렇게 되면 국내 사모투자펀드는 기업이 분리매각하는 유망사업부문의 선별인수에도 나설 수 있게 된다.
또 금융전업그룹과 독립 사모투자전문회사의 경우 자산 5조 원이 넘더라도 상호출자제한 대상으로 분류하지 않는 내용도 담겨있다. 상호출자제한 대상으로 분류될 경우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의결권이 제한되고 5년 내 해당 계열사를 처분해야 하는데, 이런 규제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5조 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 미래에셋 등 금융전업그룹과 MBK파트너스, 보고펀드 등 독립 사모투자전문회사 등이 혜택을 보게 됐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대책이 사모투자펀드 활성화에 지나치게 집중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제2의 론스타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송두한 농협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사무투자전문회사도 중요하지만 인수합병 활성화를 위해서 투자은행 부문의 경쟁력 강화방안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사모투자펀드는 투자금을 회수를 위해 단기차익을 쫓게 되고 이는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MBK파트너스의 경우 2~3년 내에 ING생명을 빨리 키워 차익을 남기고 떠나자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안다”며 “공공성과 장기적 안목이 필요한 금융업의 경우 사모투자펀드 진입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