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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여영국 정의당 대표

진짜 노동자 출신 정치인, 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 [2021년]
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 2021-04-21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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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여영국 정의당 대표
▲ 여영국 정의당 대표.

여영국은 정의당 대표다.

21대 국회에서 거대 양당체제가 더욱 공고해진 데다 김종철 전 대표의 사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당대표를 맡아 당의 활동공간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1965년 1월28일 경상남도 사천군(현 사천시) 축동면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해 학비가 들지 않는 국립 부산기계공고를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입사한 동양기계에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만나 노동운동에 발을 들였다. 문 위원장은 당시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취업을 하고 있었다.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에서 노회찬 전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두 차례 경남도의회 의원을 지냈다. 도의회 의원 때 무상급식, 진주의료원 등 현안을 놓고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와 갈등을 벌이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에 따라 치러진 2019년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2020년 총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노동자 출신인 데다 정의당 내에서 드물게 지방의회와 국회까지 폭넓게 경험한 정치인이다.

경영활동의 공과
[Who Is ?] 여영국 정의당 대표
▲ 여영국 정의당 대표가 2021년 3월24일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취임식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철 전 대표의 사퇴로 흔들리는 정의당의 키 잡아
여영국은 2021년 3월 김종철 전 대표의 사퇴로 공석이 된 당대표에 도전한다.

2021년 3월5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무너져버린 정치적 신뢰의 폐허 속에서 깊이 성찰하고,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이라는 당의 가치만 빼고 전면적 쇄신으로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출마한다”고 말했다.

여영국의 당대표 출마는 단독 출마로 사실상 추대였으며 2021년 3월23일 치러진 당대표 보궐선거에서 92.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종철 전 대표의 사퇴 이유가 성추문이었던 만큼 2021년 4월 치러진 서울시장, 부산시장 등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은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영국은 당대표가 되자마자 맞게 된 보궐선거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공약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정의당의 정치적 존재감 확대에 노력했다.

여영국은 2021년 3월25일 첫 대표단 회의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사실상 한국 사회가 부동산 투기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지만 거대 양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토지주택공사 사태의 교훈을 읽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며 “박영선, 오세훈 두 후보는 대의명분조차 사라지고 개발만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회찬 의원의 별세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여영국은 2019년 치러진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노회찬 전 의원의 별세에 따른 공석을 채우기 위한 선거였기에 본인이 나섰다. 여영국은 노회찬 전 의원을 창원 성산구에서 출마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여영국은 2018년 12월3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진보정치 1번지, 경남의 자존심, 창원에서부터 노회찬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기 위해 창원 성산구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여영국은 출마를 선언한 뒤 더불어민주당 권민호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으나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다.

여영국은 개표가 시작된 뒤 강기윤 후보에게 득표율이 10%포인트 뒤지기도 했다. 하지만 막판 대역전극을 벌여 504표 차로 승리를 거머쥔다.

여영국은 2019년 4월4일 당선 기자회견에서 “노회찬 의원이 가고 나서 많은 국민이 아파했다. 노회찬 의원은 평생의 정치활동을 통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한 마디가 되고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저 역시 말 하나, 행동 하나가 국민에게 희망되는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020년 4월 제21대 총선에서는 여영국이 미래통합당 강기윤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국회의원 재선에는 실패했다.

△경남도의회 의원 시절 홍준표 도지사와 갈등
여영국은 2010년 처음 경남도의회 의원이 된 뒤 2014년에 재선까지 성공해 8년 동안 활동했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사퇴로 2012년에는 대선과 함께 경남도지사 보궐선거가 치러지는데 이때 홍준표 후보가 당선되면서 여영국의 도정 활동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홍준표 지사는 진보와 보수 사이 이념 논쟁에 불을 붙이며 경남지역 무상급식 중단, 진주의료원 폐원 등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전국 유일의 진보정당 광역지자체 의원이던 여영국은 단식투쟁까지 벌이며 홍준표 지사와 싸웠다.

홍준표 지사는 이에 단식투쟁을 벌이는 여영국을 향해 “쓰레기가 단식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말해 막말 논란까지 일었다.

홍준표가 2017년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가 돼 도지사직을 내려놓으면서 도지사 대 도의원으로서 여영국과 갈등은 일단 마무리가 됐다.

홍준표 의원이 2019년 11월 제 21대 총선에서 당시 여영국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창원 성산구에서 출마한다는 소문이 나와 두 사람은 신경전을 벌인 적도 있다.

여영국은 2018년 도의원 3선에 도전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원성일 후보에게 515표 차이로 패배한다.

△노동자에서 정치입문까지
여영국은 1983년 2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동양기계에 입사한다. 동양기계는 통일중공업이 됐다가 현재 S&T중공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동양기계에는 당시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취업 중이던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일하고 있었다. 여영국은 문 위원장과 만났고 여영국을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의 길에 걷기 시작했다.

여영국은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문 위원장과 만남을 놓고 “제 생일인 어느 토요일 저녁에 친한 형님이 파티를 열어줘서 술을 먹고 야근조로 들어갔는데 술이 취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조퇴를 안 내주길래 화가 나서 철조망 담을 넘어서 도망갔다. 퇴사 당할 줄 알았는데 다른 작업반으로 보내더라. 그 반에 문성현 위원장이 있었다. 그와 친해지면서 노동문제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여영국은 1985년에 노조위원장이 됐고 1986년에는 파업을 주도하다 구속을 당하고 직장에서도 해고됐다.

해고된 이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마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배우자 한경숙씨를 만났다.

여영국은 노동운동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2000년에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2008년에는 진보신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이후에는 노동당을 거쳐 정의당 창당에 참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여영국이 직접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결정적 계기다. 여영국은 노동운동을 하던 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무료 변론 등 도움을 받은 인연이 있다.

여영국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접했을 당시를 놓고 “세번째로 나선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집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서거를 듣고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 내가 이대로 있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투쟁 현장에 돌아가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2010년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여영국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경남도의원에 출마해 당선이 되면서 정치를 본격 시작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여영국 정의당 대표
▲ 여영국 정의당 대표가 2021년 3월31일 '투기 공화국 해체 전국순회'를 하며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서 연설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영국은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정의당을 확실한 진보정당으로 곧추 세워야 한다.

제 21대 국회 들어 정의당은 의석도 줄어든 데 더해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소득 등 이른바 좌파적 정책을 내놓으면서 정의당의 정치적 입지까지 줄어들었다.

김종철 전 대표가 성추문으로 당대표 자리를 내려놓게 됨에 따라 정의당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특히 정의당이 여성의 권익을 앞장서 옹호해 왔기에 상처는 더욱 깊다.

정의당 당원들이 김종철 전 대표의 후임으로 여영국을 선택한 데는 기존 정의당의 행보에 대한 반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영국이 ‘노회찬의 후계자’로도 불리는 만큼 노회찬 전 의원의 사후 '노동자의 정당'이라는 색채가 약해졌다는 당 안팎의 비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꼽혔다.

여영국 역시 당대표 출마 선언에서 “정의당 당원이라는 자부심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코로나 약자들, 일하는 노동 시민들, 가난한 시민들의 삶이 있는 곳을 향해 더 아래로, 더 옆으로 가겠다”며 “‘지역’과 ‘노동’을 중심축으로 정의당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 평가
[Who Is ?] 여영국 정의당 대표
▲ 여영국 정의당 대표가 2021년 3월2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뒤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영국은 정의당 내에서도 진정한 노동자 출신 정치인으로 꼽힌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위장취업 등을 통해 노동운동을 한 정치인은 많지만 정말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취직한 노동자 출신 정치인은 흔하지 않다.

여영국은 학비가 들지 않는 국립 부산기계공고에 진학해 졸업한 뒤 바로 공장 취직을 선택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6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여영국을 낳았을 때 마흔이 넘어 젖도 잘 나오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이를 보고는 “사람 되기는 글렀다”며 여영국을 집 뒤 대나무 숲에 버렸다. 하지만 여영국의 울음소리를 들은 친할머니가 다시 데려와 사카린을 탄 쌀뜨물을 먹여가며 키웠다고 한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여영국은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노동운동 당시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벌인 일을 놓고 “모든 투쟁에서 선봉대가 됐던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나서려고 했다”며 “어정쩡하게 해서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회찬 전 의원의 사후에 지역구인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노회찬의 후계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여영국이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한 것은 그가 2016년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출마를 고심하던 노회찬 전 의원을 공들여 설득한 끝에 창원 성산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다만 노회찬 전 의원과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알고 지내기는 했으나 노동운동의 계보가 달라 2016년 이전까지 아주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 사이 인연은 여영국이 직접 노회찬의 운구에 참여하고 2019년 1월에 노회찬 재단이 설립되자 재단이사에 참여할 정도로 발전했다.

사건사고
△2019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전과 7범 논란
여영국은 2019년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전과 7범’이라며 공격을 받았다.

자유한국당 경남도당은 2019년 3월28일 ‘눈을 의심케 하는 여영국 후보의 전과기록’이라는 논평을 통해 “여 후보의 전과기록 증명을 보면 집회시위법 위반은 예상했다고 치더라도 폭력행위,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대통령선거법 위반 등 죄명이 무려 16건이다”며 “노동쟁의를 하더라고 법에 따른 절차가 보장돼 있는데 여 후보는 법을 무시하고 폭력행위와 공동주거침입, 공동상해, 공동손괴를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여영국의 상대인 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윤영석 의원이 선거 전날인 2019년 4월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여영국 후보는 전과 7범으로 대한민국 법률을 그야말로 밥먹듯이 위반하는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나”라며 선거 직전까지 ‘범법자’ 공세를 이어갔다.

정의당 경남도당은 자유한국당 경남도당의 공격에 “여 후보의 전과 7건은 모두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 땅의 노동자들과 서민들을 위해 일선에서 싸운 흔적들”이라며 “타인의 삶을 해할 수 있는 우려가 큰 강기윤 후보의 음주운전에 따른 교통사고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노동자, 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다 받은 죄가 같을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여영국의 전과 7건은 1986년 통일중공업 노조 사건, 1990년 금성사(현 LG전자) 투쟁,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투쟁 등으로 생긴 것이라고 정의당 쪽은 설명했다.

여영국의 전과 가운데 4건은 논란 당시 이미 사면복권된 상태였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여영국 정의당 대표
▲ 여영국 정의당 국회의원 후보가 2020년 4월14일 창원시 성산구 일대에서 심상정 당대표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돼 제9대 경상남도의회 의원이 됐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해 제10대 경상남도의회 의원이 됐다.

2019년 4월 경남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2021년 3월 정의당의 제6대 당대표가 됐다.

◆ 학력

1983년 2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창원대학교 산업비즈니스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배우자인 한경숙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 기타

여영국의 재산은 2020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내용을 기준으로 3억509만 원이다.

병역은 육군 이병으로 제대해 마쳤다. 제대 사유는 수형이다.

2014년에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서 상남동을 중심으로 1500여 명의 자영업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은 뒤 자영업 실태 조사 내용을 담은 ‘상남동 사람들’을 썼다.

어록
[Who Is ?] 여영국 정의당 대표
▲ 여영국 정의당 대표가 2021년 3월23일 서울 영등포구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당선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기득권 정당은 독과점한 정치 권력의 폐해에 대해서는 일말의 반성도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지 못하는 그것이 바로 기득권 정치의 민낯이다.” (2021/04/12, 정의당 대표단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판하며)

“불평등과 차별에 고통받는 세상 모든 존재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이 손잡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 거대 양당의 이익동맹에 맞서 보통 사람들의 땀의 가치를 옹호하고 더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2021/03/23, 당대표 당선소감에서)

“무너져버린 정치적 신뢰의 폐허 속에서 깊이 성찰하고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이라는 당의 가치만 빼고 전면적 쇄신으로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출마한다. ‘노동자 여영국’은 ‘노동자 정치인 여영국’이 되겠다. 지역과 노동을 중심축으로 정의당을 다시 시작하겠다.” (2021/03/05,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노동의 가치와 정신을 다시 가다듬어 대재앙에 맞서 국민들의 삶을 함께 지키기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 (2020/03/26,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 정의당 후보등록 및 공동선거대책위원장 기자회견에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창원 성산구에 출마하는 것은 오직 그분과 당의 선택이다. 출마할 것이라면 여기저기 저울질 말고 경남도지사 때 기백을 살려 당당하게 출마하라.” (2019/11/3,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020년 총선에서 창원 성산구에 출마하려 한다는 소문을 놓고)

“국회로 가서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민생개혁을 반드시 주도하겠다. 국회 개혁을 반드시 주도하겠다. 이것이 바로 노회찬의 정신을 부활시키는 것이고 계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9/04/04, 2019년 보궐선거 당선소감에서)

“1986년 스물셋에 처음 구속됐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무료로 변론을 해주셨다. 우리를 살아 있는 예수라는 표현으로 옹호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헌신적 활동으로 힘든 시기를 버텨 낼 수 있었다. 늘 그때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2019/03/27, 2019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과 후보단일화를 이루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뒤 권양숙 여사와 차담회에서)

“진보정치 1번지, 경남의 자존심, 창원에서부터 노회찬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기 위해 창원 성산구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 (2018/12/03,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지원을 중단했던 경남지역 무상급식을 중학교까지 확대하기 위해 자유한국당이 결단해야 한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단되고 왜곡된 경남의 무상급식 역사를 바로 잡고 원상회복하는 것이기에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결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0/07/06, 경남도의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당시 도의회 의석 대부분을 차지했던 자유한국당을 향해 경남지역 무상급식 재개를 요구하며)

“이번 단식농성을 통해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왜 사퇴시켜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쓰레기’, ‘개가 짖어도’ 등 뒷골목 양아치도 쓰지 않는 저질 막말을 하고도 사과는커녕 이것이 막말이 아니라 참말이라며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2016/07/19,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마치며)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물어 도지사직에서 사퇴시키는 것이 파탄 위기와 범죄자로 내몰린 공무원과 도민을 살리는 길이라 확신한다. 홍준표 지사는 그동안 공공의료기관을 폐쇄하고 무상급식을 중단해 도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도민 갈등과 분열의 진원지 역할을 해 왔다.” (2016/07/12,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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