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로 쌓아 놓게 된 돈을 어디에 쓸까?
정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는 사업 다각화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면이었다. 앞으로 정 회장이 보여줄 행보도 이런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일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 이후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 HDC현대산업개발, 신사업 투자할 돈은 마련됐다
HDC현대산업개발 현금 곳간이 불어나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2020년 말 별도기준으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단기투자증권, 매출채권 및 기타유동채권을 모두 합하면 4조2980억 원이다. 2019년 말보다 1조5764억 원 증가했다.
1년 안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을 뜻하는 유동자산 가운데서도 재고자산을 뺀 이들은 기업이 신속하게 현금화할 수 있는 대표적 자산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신속하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의 규모가 빠르게 늘어난 것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19년 말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을 체결한 뒤 2조1천억 원이 넘는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상증자 3200억 원, 사채 3천억 원, 사모사채 1700억 원, 공사대금 유동화 3700억 원, 은행대출 5700억 원 등 1조7천억 원의 실탄을 마련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큰 타격을 받고 아시아나항공의 상황도 급격히 악화하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은 장고 끝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뜻을 접었다.
결과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이 마련했던 막대한 현금도 고스란히 수중에 남게 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 현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보유한 단기금융상품의 규모는 2020년 말 기준으로 1조4917억 원이다. 2019년 말보다 단기금융상품 금액이 8384억 원 늘었다. 이자수익이라도 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HDC현대산업개발이 개발사업을 추구하는 디벨로퍼(개발사업자)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양한 자체사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데 현금을 쓸 수도 있다.
현재처럼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 이자수익을 얻다가 차입금 만기 도래시점에 맞춰 현금으로 상환함으로써 안정적 재무구조를 유지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신사업에 진출하는데 현금을 활용하지 않겠냐는 시각도 만만찮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나섰다는 점을 감안할 때 HDC그룹이 현금을 좀 더 공격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단도투자 믿는 정몽규, HDC그룹의 한 방 언제 어디서 보여줄까
HDC그룹을 이끄는
정몽규 회장은 사업 다각화에 관심이 많다.
정 회장은 HDC그룹의 전신인 현대산업개발을 처음 맡았을 때부터 사업 다각화를 염두에 뒀다. 그룹의 주축인 HDC현대산업개발이 하는 건설업의 특성 때문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건설 일이야 경기가 좋으면 재미있고 경기가 나빠지면 힘들고 그렇다” “건설업을 본업으로 하더라도 다른 비중을 더 키워 리스크를 헤지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룹 전체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경기의 흐름에 민감한 건설업의 비중을 높게 들고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HDC그룹이 영착악기와 현대아이파크몰, 파크하얏트호텔, HDC신라면세점 등 건설과 무관한 영역으로 꾸준히 사업을 넓힌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최근에는 발전사업에도 힘을 싣고 있다.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것도 건설업 이외의 분야에서 그룹의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흐름들을 살펴볼 때 정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보유의 현금을 활용해 다른 사업 진출의 기회를 꾸준히 탐색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 회장은 언제 다시 재계를 놀라게 할 행보를 보일까?
정 회장은 조용한 행보 속에서 기회를 신중하게 찾는 경영인이다. 그의 경영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 단면은 바로 ‘단도투자’다.
‘단도’는 부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 어원의 ‘다나’에서 온 말로 위험부담을 제로 수준으로 줄이면서 고수익을 창출하는 사업방식을 뜻하는데 이 단도투자의 핵심은 바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헤지펀드의 대표이자 단도투자의 대가인 모니시 파브라이는 단도투자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주 적은 수준의 투자만 해라. 유리한 기회가 오면 단호하게 지닌 모든 것을 걸어라.”
정 회장은 실제로 모니시 파브라이 대표와 관계를 유지하며 단도투자 원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경영에 접목하는데 힘써온 것으로 알려진다.
HDC그룹은 과거만 해도 다른 재벌그룹과 다르게 인수합병 시장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아 외형 확대에 대한 의지에 의구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선을 깨고 그룹의 명운을 걸면서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든 모습은 정 회장의 단도투자 경영전략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정 회장의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때도 극도로 말을 아껴 인수 의지를 의심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자마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HDC그룹의 변화를 자신하는 모습을 언론 앞에 보이기도 했다.
이런 면들을 고려하면 정 회장이 기회만 되면 다시금 사업 다각화에 나설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HDC현대산업개발 2021년 신년사의 열쇠말은 ‘비도진세’였다. 이는 도약할 준비를 하고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자는 뜻이다.
◆ 정몽규 인생 ‘삼모작’의 사업, HMM 나오면 인수할까
정몽규 회장은 현대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현대차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차를
정몽구 회장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하면서 정 회장의 아버지인 정세영 명예회장이 눈물을 머금고 현대차에서 물러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정몽규 회장은 아버지인 정세영 명예회장과 함께 1999년 현대산업개발을 물려받아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한다.
정 회장은 훗날 이를 회고하며 ‘다행히 젊은 나이에 인생을 이모작한 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부터는 삼모작, 사모작을 준비해 봐야겠다”고 덧붙였다.
정몽규 회장은 자동차분야에서 10년을 경험했다. HDC그룹 시절을 따지면 주력인 건설사업에서만 20년 넘게 있었다.
정 회장은 HDC그룹을 통해 금융과 면세점사업 등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룹의 주된 성장동력이라고 꼽을 수 있는 사업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기에는 2%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HDC그룹의 재계순위가 30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정몽규 회장은 HDC산업개발의 든든한 현금곳간을 손에 쥐고 앞으로 어떤 ‘삼모작’ ‘사모작’ 사업에 진출하려 할까?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려고 할 때 한 발언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HDC그룹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HDC그룹은 모빌리티그룹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이미 한진그룹으로 건너가게 된 상황에서 HDC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발판으로 그리려고 했던 청사진을 똑같이 재현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수 년 안에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기업 가운데 모빌리티그룹 도약의 퍼즐도 있다. 바로 해운사 HMM이다.
정몽규는 과거 기자회견에서 모빌리티그룹 도약이 가능한 지점으로 “HDC그룹이 항만사업을 하는 만큼 육상과 해상, 항공 등을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HDC그룹이 현재 인천과 부산 등에서 항만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HMM 인수가 영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HMM은 과거 현대그룹에 속했던 현대상선이 이름을 바꾼 회사다. 정주영 회장의 유산을 이어받는다는 측면에서 HDC그룹이 인수전에 참여한다면 명분도 충분해 보인다.
이미 인수합병 시장에서는 HMM이 매물로 나오면 HDC그룹을 포함한 범현대가가 참여할 것이라는 얘기는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 정몽규, ‘대변신’ 흐름 타고 HDC그룹에 미래사업도 품을까
정 회장이 HDC그룹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최근 재계의 흐름을 살펴보면 재벌기업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이종산업’ 투자에 힘을 싣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도심항공 모빌리티(UAM)이나 로봇과 같이 자동차 제조에서 대폭 확장된 사업에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SK그룹도 통신과 정유, 반도체 등 전통적 사업분야를 넘어 바이오분야에서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으며 여기에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ESG경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성장성이 옅어진 기존의 사업만으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고 모두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것이다.
정몽규 회장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
HDC그룹은 여태껏 새 사업에 진출할 때 비교적 안정적 태도를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면세점사업 진출이다.
HDC그룹은 현대아이파크몰을 통해 면세점사업에 진출하면서 호텔신라와 손잡았다. 기존 면세점사업자인 호텔신라의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HDC그룹이 부동산114를 인수한 것도 현대산업개발의 주된 사업영역인 건설업과 부동산의 시너지를 노린 행보였다.
이런 흐름과 달리
정몽규가 HDC그룹의 새로운 결을 찾아내려는 행보를 보인다면 앞으로 HDC그룹으로서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채널Who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