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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베일에 쌓인 비운의 은둔형 오너
김수정 기자 yeoeuny@business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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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이호진은 1962년 12월 8일 부산에서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석사과정과 뉴욕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았다.

1993년 흥국생명 이사로 경영 일선에 등장해 태광산업 대표이사 사장, 대한화섬 대표이사 사장을 거쳤다.

맏형인 이식진 전 부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한 뒤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해 2012년 퇴임했다.

2011년부터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Advisor at Taekwang Industrial
Lee Ho-jin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재계 총수들 가운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려왔다. 베일에 싸여 있었던 만큼 외부에 비쳐진 이미지가 나쁘지는 않았다. 180cm의 훤칠한 키에 훈남형 외모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다.

2011년 검찰에 구속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휠체어를 타고 수염을 기른 채 수척한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냈다.

'은둔의 경영자', '얼굴 없는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런 면은 아버지 고 이임용 창업주와 흡사하다는 평이다.

회장 재직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에도 속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재벌 모임에도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다.

언론 인터뷰를 사절한 것은 물론 외부 공식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회사 직원들 조차 이 회장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다. 캐주얼 한 차림으로 회사에 불쑥 등장하기 일쑤였으며 수행 비서를 대동하지 않고 다닐 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한 지인 외에는 외부인도 잘 만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에서는 예의 바르고, 아버지를 닮아 검소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모든 직원에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해 대학 동기 동창인 진형준 전 흥국투신운용 대표이사에게도 공•사석에서 모두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그룹 경영면에서는 공격형 스타일로 평가 받았다. 회장 취임 후 유선방송 사업에 뛰어들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업계 1위에 올려 놓을 만큼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종합편성 사업자 선정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하며 미디어 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최종 탈락했다.

섬유가 주력이었던 태광그룹의 업종을 미디어와 금융 부문으로 확대하고 석유화학•서비스•레저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계열사 50여 개를 보유한 재계 서열 40위권에 올려 놓았다.

그룹 내에서 독단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되기도 했다. 방송 진출 결정 당시에도 측근들의 반대가 있었으나 이 전 회장의 결정을 제지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태광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내부 고발에서 비롯됐을 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제보와 폭로가 잇따랐던 것도 이 전 회장의 독단적 경영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이가 많았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영화, 미술, 음악 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흥국생명 사옥 앞 초대형 조각 '망치질 하는 사람' 설치를 주도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경영을 하지 않았으면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1993년부터 흥국생명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1996년 아버지 이임용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1997년 서른 다섯의 나이에 태광산업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2004년 이식진 전 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경영권을 물려받고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태광그룹 경영 일선에 나선 뒤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 고 이임용 회장이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46년 동안 무차입 경영 원칙을 지켰을 만큼 태광의 현금동원력은 막강했다. 이를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에 나섰다. 특히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업종 등에 진출해 섬유산업 위주의 주력 업종에서 탈피했다.

1997년 설립한 종합유선방송(MSO) 사업체인 ‘티브로드’를 지역케이블TV 20개를 거느린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키웠다.

금융 쪽으로 흥국생명,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 등의 자회사를 보유하는 등 보험에서 증권, 투신, 자산운용, 대출, 예금에 이르기까지 종합 금융서비스 회사로 성장시켰다.

석유화학•서비스•레저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사업 다각화를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9년부터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며 위기설이 불거져 나왔다. 해고 직원들의 불만에서 비롯된 내부 고발 사태, 적극적인 사업 확장 과정에서 의혹을 받았던 비자금 문제, 편법 재산상속 문제 등이 잇달아 터졌다.

2010년 각종 구설수에 오르며 검찰과 국세청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2011년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2012년 법원의 판결을 6개월 정도 앞둔 시점인 2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으로 풀이됐다.

◆ 학력

1981년 서울 대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1985년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87년 코넬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뉴욕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진형준 전 흥국투신운용 대표이사와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동창이다. 진헌진 전 티브로드 사장과 대원고, 서울대 동창이다.

◆ 가족관계

고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와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3남 3녀를 뒀는데 이호진은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임용 창업주는 1921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에서 실업학교를 졸업했다. 1942년 귀국 후 같은 동네 유지 이송산씨의 맏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와 중매로 결혼했다.

어머니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와 이기화 전 태광그룹 회장의 누나이다.

면사무소에서 평범한 공무원으로 일하던 이임용 창업주는 부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가 부산에서 차린 작은 직물공장이 번창하자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54년 부산 문현동에 설립한 태광산업은 나일론, 스판덱스 등 다양한 섬유 소재의 호황기를 거치며 대규모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특히 양모 대체품 아크릴 특수에 힘입어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였다.

이임용 창업주는 섬유사업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군사정권 시절 야당의 거물급 정치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를 처남으로 둔 이임용 창업주는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는 등 정치적 외풍을 맞기도 했다.

안정과 내실 경영을 중시하며 철저히 은둔형 경영을 해왔던 이 창업주는 1996년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창업주가 작고한 뒤에는 외삼촌 이기화 전 회장과 큰 형인 이식진 전 부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부산고와 서울대 화공과를 나온 이기화는 창업 동지로 일컬어질 만큼 창립 초기부터 경영에 깊숙이 참여했던 인물이다.

2004년 이식진 전 부회장이 5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경영권과 상속 지분 문제를 둘러싸고 집안 싸움이 벌어졌다. 이기화 전 회장은 전문 경영인의 경영 참여 등을 요구하며 이호진과 대립각을 세워 이후 사이가 불편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한국전쟁 직후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해 마련한 종잣돈으로 직물공장을 세웠다. 태광 창업의 실질적 주역인 셈이다. 경영 전면에 나선 적은 없지만 자금 관리와 후계 구도 결정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한다.

2011년 검찰의 태광 비자금 수사에서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아들 이호진과 함께 구속 기소됨으로써 모자 동시 구속이라는 전례 없는 사태를 맞은 것도 ‘태광금고’, ‘왕상무’ 등으로 불릴 만큼 경영 전반에 걸쳐 깊숙이 관여해 온 까닭이다.

이호진의 두 형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큰 형인 이식진 전 부회장은 2004년 55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둘째 형 이영진씨는 1994년 사고로 사망했다.

이식진 전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후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씨와 중매 결혼했다. 정아, 성아, 원준 등 1남2녀를 두었다. 유교적 관습을 따라 연애 결혼을 반대했던 이임용 창업주의 뜻에 따라 이호진 본인은 물론 형제들 모두 중매로 결혼했다.

큰 형 이식진을 제외한 형제들 모두가 정•관•재계 유력 인사 집안과 혼사를 맺음으로써 여느 재벌가 혼맥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둘째 형 이영진씨는 1976년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의 막내딸 장옥빈씨와 결혼했다.

이호진의 부인 신유나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조카이자 신 총괄회장의 동생 신선호 일본산사스식품 회장의 맏딸이다.

큰 누이 이경훈씨는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의 막내아들 허승조 전 GS리테일의 대표와 결혼했다.

둘째 누이 이재훈씨의 남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양원용 경희대 의대 교수이다.

양택식 전 시장 가문과의 혼인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노신영 전 국무총리, 김한수 한일합섬 창업주 등과 한 다리 건너 사돈 관계로 이어진다.

셋째 누이 이봉훈씨는 한태원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전 회장과 결혼했다.

부인 신유나씨와 사이에서 현준, 현나 등 1남1녀를 두었다.

◆ 상훈

1999년 제33회 조세의 날 성실 납세자로 선정돼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기타

태광 가의 장손은 고 이식진 부회장의 장남인 이원준씨다. 태광산업의 지분 7.49%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회장의 지분 15.14%에 뒤이은 2대 주주는 11.22%를 가진 티시스라는 회사다. 티시스는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현준이 대주주로 있는 개인 회사다. 이 회장이 장손인 조카의 후계 승계를 저지하고 아들을 후계자로 앉히기 위해 아들에게 편법 증여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자 승계 원칙을 지켜왔던 태광그룹의 후계 구도를 놓고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오너의 건강 악화와 실형으로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태광그룹은 2012년 3월 심재혁 태광산업 부회장을 영입했다. 이 전회장과는 처외삼촌 관계인 만큼 친인척 경영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심 부회장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LG그룹 회장실과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부사장, 인터컨티넨탈 호텔, 레드캡투어 대표이사 등을 거쳤다.

어록


“모두 제 부덕의 소치다. 저에게 죄를 주시고 어머니의 죄를 사해 달라. 죄송하다.” (2012/11/27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 평가

재계 총수들 가운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려왔다. 베일에 싸여 있었던 만큼 외부에 비쳐진 이미지가 나쁘지는 않았다. 180cm의 훤칠한 키에 훈남형 외모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다.

2011년 검찰에 구속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휠체어를 타고 수염을 기른 채 수척한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냈다.

'은둔의 경영자', '얼굴 없는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런 면은 아버지 고 이임용 창업주와 흡사하다는 평이다.

회장 재직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에도 속하지 않은 것은 물론, 재벌 모임에도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다.

언론 인터뷰를 사절한 것은 물론 외부 공식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회사 직원들 조차 이 회장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다. 캐주얼 한 차림으로 회사에 불쑥 등장하기 일쑤였으며 수행 비서를 대동하지 않고 다닐 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한 지인 외에는 외부인도 잘 만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에서는 예의 바르고, 아버지를 닮아 검소한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모든 직원에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해 대학 동기 동창인 진형준 전 흥국투신운용 대표이사에게도 공•사석에서 모두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그룹 경영면에서는 공격형 스타일로 평가 받았다. 회장 취임 후 유선방송 사업에 뛰어들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업계 1위에 올려 놓을 만큼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종합편성 사업자 선정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하며 미디어 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최종 탈락했다.

섬유가 주력이었던 태광그룹의 업종을 미디어와 금융 부문으로 확대하고 석유화학•서비스•레저 분야에도 진출하는 등 계열사 50여 개를 보유한 재계 서열 40위권에 올려 놓았다.

그룹 내에서 독단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되기도 했다. 방송 진출 결정 당시에도 측근들의 반대가 있었으나 이 전 회장의 결정을 제지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태광에 대한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내부 고발에서 비롯됐을 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제보와 폭로가 잇따랐던 것도 이 전 회장의 독단적 경영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이가 많았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영화, 미술, 음악 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흥국생명 사옥 앞 초대형 조각 '망치질 하는 사람' 설치를 주도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경영을 하지 않았으면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 기타

태광 가의 장손은 고 이식진 부회장의 장남인 이원준씨다. 태광산업의 지분 7.49%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회장의 지분 15.14%에 뒤이은 2대 주주는 11.22%를 가진 티시스라는 회사다. 티시스는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현준이 대주주로 있는 개인 회사다. 이 회장이 장손인 조카의 후계 승계를 저지하고 아들을 후계자로 앉히기 위해 아들에게 편법 증여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자 승계 원칙을 지켜왔던 태광그룹의 후계 구도를 놓고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오너의 건강 악화와 실형으로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태광그룹은 2012년 3월 심재혁 태광산업 부회장을 영입했다. 이 전회장과는 처외삼촌 관계인 만큼 친인척 경영 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심 부회장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LG그룹 회장실과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부사장, 인터컨티넨탈 호텔, 레드캡투어 대표이사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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