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쿠팡이 국내 대신 미국 상장을 결정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가장 큰 이유로 김 의장의 경영권 보장이 거론되고 있다.
쿠팡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상장 신청서류에 따르면 쿠팡은 김범석 의장이 단독으로 보유한 클래스B 주식에는 일반 주식인 클래스A의 29배에 해당하는 차등의결권이 부여된 것으로 밝혀졌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지닌 주식에 보통주보다 큰 힘을 부여함으로써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경영권 방어수단이다. 국내에서는 차등의결권이 경영 세습과 지배력 남용을 정당화한다는 이유 때문에 도입되지 않았다.
김 의장은 과거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SBG비전펀드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의결권을 보장받기 위해 투자자 측과 협의해 차등의결권을 보유해왔다.
김 의장의 클래스B 보유지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분 2%만 있어도 58%에 해당하는 주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 향후 안정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의장이 보유한 클래스A 지분은 1.8%다.
쿠팡은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SBG비전펀드 등으로부터 34억 달러(약 3조8천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SBG비전펀드는 현재 쿠팡의 모회사 쿠팡LLC 지분 3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하지만 김 의장은 그동안 차등의결권을 통해 쿠팡에서 지배력을 유지해왔고 상장 뒤에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김 의장이 이 주식을 매각하거나 증여, 상속하면 클래스B의 차등의결권은 무효화된다.
이런 차등의결권은 알파벳(구글 지주회사)이나 페이스북 등 많은 미국 대표 벤처기업들이 도입했다.
알파벳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 클래스A와 의결권이 없는 클래스C가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증시에서 거래되지 않는 클래스B 주식만 소유하고 있는데 주당 의결권은 클래스A의 10배로 이들은 15%의 지분을 통해 약 56%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구글이 공격적으로 유망한 벤처기업을 인수하면서 지금처럼 성장했는데 이는 창업주가 기업의 상장 뒤에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 의장은 이번 상장을 통해 ‘쿠팡이츠’와 ‘로켓프레시’, ‘쿠팡플레이’ 등 쇼핑, 배달,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등 신사업 확대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에서는 쿠팡의 기업가치를 최대 55조 원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최소 1조 원에서 최대 5조 원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 의장은 확보한 자금을 통해 인수합병에도 공격적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은 지난해 4월 전자결제기업인 하이엔티비를, 7월에는 싱가포르의 온라인 동영상 회사인 훅을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 의장은 “물류 인프라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국에 수조 원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차등의결권을 바탕으로 뉴욕증시 상장 뒤에도 지속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적으로 외부 자본을 유치하더라도 김 의장의 의결권은 크게 희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차등의결권이 ‘1주 1의결권’ 원칙을 훼손하고 대주주나 창업주의 지배권을 보호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하는 견해도 있다”며 “하지만 차등의결권을 보유한 기업은 경영권과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