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제해사기구가 2023년부터 실시하는 에너지효율등급지수(EEXI) 규제로 글로벌 선박시장에서 선박연료의 전환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효율등급지수 규제는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2008년 평균치보다 30% 감축하도록 강제한다.
이 규제를 충족하려면 선박연료가 기존 석유연료에서 LNG나 LPG(액화석유가스) 등 가스연료로 바뀌어야 한다.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는 선박은 운항속도에 큰 제약을 받는다. 이는 선박의 가용 톤마일(선박의 수송량 단위) 하락으로 이어져 해운시장에서 선박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계에서 운항 중인 선박 2만6천여 척 가운데 2013년 이후에 인도된 선박 8천여 척은 가스연료 추진방식으로 추진체계 개조가 가능한 전자제어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문제는 2013년 이전에 인도된 1만7천여 척이다. 이 선박들은 추진체계 개조가 불가능한 기계식 엔진을 탑재하고 있어 선주사들의 교체 발주가 필요하다.
선박 건조에 통상 짧으면 1년 반, 길면 2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3년 실시될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선박은 지금 발주돼야 한다.
일본과 중국 조선사들이 LNG추진선을 정상적으로 건조해 인도한 사례가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선박 교체 수요는 한국 조선3사에 몰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조선3사가 1년에 인도하는 선박 척수의 합계치는 300여척 수준에 그친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LNG추진선의 발주 수요와 비교해 조선3사의 선박 공급 총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한국 외에 경쟁 조선소도 없는 만큼 조선3사가 거대한 수혜를 볼 것이다”고 내다봤다.
반면 노후선박의 경쟁력이 낮아져 선주사들이 선박을 모두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을 단순한 논리로 보는 시선도 만만찮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운사들이 중고선박을 모두 LNG추진선으로 교체하기보다는 일부 선박만 교체하면서 규제 시행에 따른 업황 변화를 관망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봤다.
글로벌 1위 컨테이너선사인 덴마크 머스크(Maersk)와 1위 LPG선사인 싱가포르 BW LPG가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머스크는 LNG추진 컨테이너선을 바로 발주하지 않고 무탄소선박의 실증을 좀 더 기다린다는 방침을, BW LPG는 경쟁사를 인수해서 선박 수를 확대하는 것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각각 세웠다.
해상 환경규제가 2023년의 에너지효율등급지수 규제로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제해사기구는 2030년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2008년 평균치보다 40%, 2050년에는 70% 감축하는 환경규제의 도입을 추가로 논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박의 내구연한을 25년 안팎으로 보며 최근에는 선박 건조기술이 향상돼 40년 이상을 운항하는 선박도 있다. 2050년의 규제조차 조선사와 선사들에게는 가시권에 들어온 규제인 셈이다.
그런데 LNG나 LPG 등 가스연료의 활용으로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가스연료만으로는 2030년의 규제도 충족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조선업계 중론이다.
조선3사는 암모니아추진선이나 수소연료전지추진선 등 무탄소선박의 설계를 개발해 글로벌 선급협회들의 기본승인을 받는 등 기술적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대안들이 아직 실제 선박 건조를 통해 입증되지는 않았다.
환경규제가 강력해진다고 해서 선주사들이 섣불리 무탄소 선박 발주에 나설 만한 상황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결국 무탄소선박의 첫 실증이 언제 이뤄지는지가 중요하다”며 “한국 조선사를 주로 찾는 대형 선주사들은 대체로 신기술의 도입에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만큼 최근에는 무탄소선박의 실증 기회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고객사를 찾는 영업활동에도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