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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웅 다음 창업자(왼쪽)과 김범수 카카오톡 의장 |
카카오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합병은 또 하나의 권력교체를 낳았다. 다음의 이재웅 창업자는 최대주주의 자리를 카카오 김범수 의장에게 물려주고 뒷전으로 완전히 물러나게 됐다.
합병 법인의 이름은 ‘다음카카오’다. 외견상으로 다음이 카카오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사실상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외거래가로 계산한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2조3500억 원으로 다음(1조590억 원)의 2배 이상이다. 카카오는 합병의 형식을 빌려 비용과 시간을 줄이며 코스닥에 상장해 돈을 마련하려고 한다.
이재웅 창업자는 다음 지분 14%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그러나 합병 후 그의 지분은 4% 수준으로 떨어진다.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 지분 29%를 소유하고 있다. 2대 주주인 케이큐브홀딩스도 김 의장이 100% 보유한 회사다. 두 지분을 합치면 카카오 53.5%를 보유하고 있다. 합병 후 김 의장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45%에 이른다. 이재웅 창업주와 지분에서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김 의장은 이번 합병을 통해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에 오르는 한편 주식대박을 터뜨리게 됐다. 김 의장의 지분가치만 9천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이재웅의 명예로운 퇴장?
이번 합병은 IT업계의 권력이 포털에서 모바일 메신저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합병은 유선의 대표주자인 이재웅 창업자가 퇴장하고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재웅 창업자는 1995년 다음을 창업해 외국 포털 야후를 누르고 국내 대표 포털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모바일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출범한지 이제 8년 된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에게 사실상 다음을 내주게 됐다.
다음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포털 2위다. 그러나 다음의 점유율은 20%로 1위 네이버의 점유율 75%와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다음은 사실상 성장 가능성이 닫힌 회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재웅 창업자로서 성장이 막힌 다음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해 대주주의 지배력을 희생했다. 이번 합병이 이재웅 창업주의 명예로운 퇴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이재웅 다음 창업자와 다음-카카오의 합병에 대해 사전합의가 있었다"며 "합병 이후에도 다음카카오의 주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웅 창업자가 지분을 잃더라도 합병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웅 창업자는 2007년 다음의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뒤 최대주주를 유지하면서 경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재웅 창업자의 지분이 크게 줄어도 다음카카오의 향후 경영과 관련해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이재웅 창업자는 다음 경영에서 물러난 뒤 사회적 벤처기업을 양성하고 투자하는 소셜 벤처 인큐베이터 ‘소풍’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다음 지분을 조금씩 팔아 스타트업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다음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을 때 그의 지분은 18%였는데,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지금은 14% 수준이다.
벤처캐피털업계 한 관계자는 "이재웅 창업자가 벤처기업을 상대로 경영과 법률, 특허, 마케팅 부문에 대한 노하우 전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상당한 개인재산을 투자하는 등 남다른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웅 창업자의 여동생들이 조금씩 보유하던 다음의 주식도 지난해 상반기에 다 처분했다. 현재 다음에 대한 이재웅 창업자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그의 어머니 0.5% 정도다.
◆ 이재웅이 다음 경영에서 물러난 이유
이재웅 창업자와 김범수 의장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회사 대표에서 물러났다. 김범수 의장이 NHN을 떠난 2007년 9월 이재웅 창업자도 다음 대표이사를 사임했다. 하지만 김범수 의장은 NHN을 떠나 카카오를 세웠고 이재웅 창업자는 퇴사 후 벤처 지원 외에 이렇다 할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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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웅 다음 창업자<사진=벤처스퀘어> |
이재웅 창업자가 다음을 설립한 뒤 12년 만에 갑자기 다음을 떠난 이유를 두고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그는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단지 “당분간 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뿐이다.
하지만 업계는 당시 이재웅 창업자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재웅 창업자는 포털 선두주자로 승승장구했으나 2002년 자체 검색기술을 내세우며 도전한 네이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당시 다음은 커뮤니티 ‘카페’ 에만 전념하며 검색시장에 소홀했다. 이 때문에 다음은 네이버에 포털 선두자리를 내주었다.
이재웅 창업자가 IT업계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특히 2004년 미국 포털 라이코스를 1천억 원을 들여 인수해 증권가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다음의 2005년 상반기 실적발표 행사에서 한 애널리스트가 미국 라이코스의 인수에 대해 “실패가 뻔한 사업을 왜 인수해 실적 악화를 초래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자리는 공식적으로 이재웅 창업자가 참석하지 않은 자리였다. 그러나 몰래 그 자리에 있었던 그는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기업이 성장을 하려면 모험과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왜 유독 다음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느냐.”
다음이 코스닥에 상장한 뒤 기대한 만큼 실적을 내지 못하자 투자자들의 비판이 쏟아졌고 실적으로만 판단하는 투자자들의 압박에 지쳐 그가 떠났다는 것이다.
또 회사를 떠나기 1년 전에 그는 경품용 상품권업체로 지정받기 위해 정부에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압수수색과 출국금지를 받았다. 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웅 창업주는 이 사실을 보도한 SBS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150억 원 소송을 걸었다. 결국 1년 후 SBS는 이재웅 창업자에게 5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