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부회장이 이 부회장의 빈자리를 대신하게 될지 주목된다. 김 부회장은 삼성전자 전문경영인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26일 재계에서는 3월 열리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김기남 부회장이 회장에 올라 이 부회장의 부재기간 삼성전자를 이끌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감옥에 있는 동안 삼성전자의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재수감돼 사면이나 가석방이 없다면 앞으로 1년6개월의 징역을 살아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어느 때보다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다.
반도체분야에서는 메모리반도체 일인자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2030년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쪽은 중국기업이 바짝 따라붙고 있고 가전 역시 경쟁이 치열하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산업의 성장도 고려해 대응해야 한다.
김 부회장은 이처럼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한 시기에 이 부회장을 대행해 삼성전자의 사업방향을 세울 인물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부회장은 2018년 권오현 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으로부터 DS부문 대표를 물려받았다. 이후 주주총회, 시무식 등 행사를 통해 삼성전자의 사업전략과 비전 등을 외부에 소개하는 데 목소리를 냈다. 삼성전자 각자대표 3인 가운데서도 회사 전체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김 부회장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이 부회장이 네덜란드 반도체장비기업 ASML을 방문해 협력을 논의했을 때 삼성전자 전문경영인 가운데 김 부회장만이 유일하게 동행했다.
ASML이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장비는 고성능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수다. 이 부회장은 극자외선 장비를 기반으로 미래 반도체사업 전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김 부회장의 조언을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적 성과 측면에서도 김 부회장의 존재감이 크다. 삼성전자 DS부문은 현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영업이익을 보면 2019년 15조 원에서 2020년 20조 원 이상으로 확대돼 삼성전자 전체 실적의 5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물론 김 부회장이 앞으로 삼성전자를 계속 경영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김 부회장의 대표이사 임기는 올해 3월까지고 나이도 만 63세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은 60세 이상 전문경영인을 잘 선임하지 않는 이른바 ‘60세 룰’이 암묵적 규칙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총수가 자리를 비운 비상상황은 일반적 인사기조에 변화를 주기 충분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 부회장과 같은 경험 많고 실적이 좋은 전문경영인을 교체하는 쪽보다는 승진 등을 통해 더 힘을 실어주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왼쪽부터)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피터 버닝크 ASML CEO가 ASML 본사에서 극자외선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다만 김 부회장이 3월 주총에서 실제로 회장에 오른다고 해도 이 부회장 역할을 완전히 대신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전문경영인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 회장은 2020년 7월 삼성전자 자체 인터뷰에서 “나도 전문경영인 출신이지만 굉장한 적자, 불황상황에서 ‘몇 조 투자하자’고 말하기 쉽지 않다”며 “위험한 순간에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층의 결단,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전 회장은 앞서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처음 연루됐을 때 삼성전자 회장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전 대통령 박근혜씨와 최순실씨 쪽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17년 2월 징역 5년을 선고받아 2018년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형을 살았다.
권 전 회장은 당시 부회장으로서 삼성전자 총수 역할을 대행했는데 2017년 11월 인사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중심을 잡아줄 회장급 전문경영인이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 구속 이전에도 다른 회장급 전문경영인이 삼성 오너일가의 빈자리를 지켰던 사례가 있다.
고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2008년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아 경영일선에 물러났을 때는 이수빈 전 삼성생명 회장이 3년 동안 삼성그룹 총수역할을 대행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