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IT선도업체인 애플과 전기차 생산에서 협력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8일 애플과 함께 전기차를 개발한다는 보도를 놓고 공시를 통해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 개발 협력요청을 받고 있으나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도 “현재 애플과 협의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초기 단계로 구체적 협력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애플은 현재 전기차 '애플카' 출시를 위해 글로벌 여러 자동차업체와 관련 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협력이 실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IT시장을 선도하는 것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 애플과 전기차시장에서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는 시선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5년 전만 해도 전기차시장에서 후발주자로 평가됐다.
현대차가 2016년 야심차게 내놓은 아이오닉 전기차는 한 번 충전으로 191km(국내 기준)를 갔다. 미국 테슬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이 내놓은 전기차가 한 번 충전으로 300km 이상을 갈 때였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도 지난해 말에서야 내놓았다. 처음부터 전기차 플랫폼을 활용한 미국 테슬라보다 10년, 완성차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전용 플랫폼을 선보인 독일 폴크스바겐보다 2년 이상 늦다.
하지만 지금의 현대차그룹은 애플과 협력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전기차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말 선보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는 한 번 충전으로 500km 이상 주행 가능하고 5분 급속충전으로 100km를 갈 수 있다.
고성능 모델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3.5초가 채 안 걸려 테슬라 등 글로벌 전기차시장 선도업체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이 애플과 실제 협력한다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차체를 구성하는 기본 뼈대와 주요 부품인 고속화모터, 배터리시스템 등을 포함해 전기차의 성능 경쟁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꼽힌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보유한 완성차업체들은 이를 제3의 전기차업체에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데 현대차 역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 사장은 지난해 12월 E-GMP 공개 행사에서 “이미 다른 업체로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과 관련해 여러 문의를 받았다”며 “E-GMP가 경쟁업체보다 경쟁력이 있는 만큼 시장에 나오면 계속 요청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내연기관차시장의 단단한 판매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전기차시장 점유율을 계속 높여가는 점도 애플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코로나19라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도 지난해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주요시장에서 신차를 앞세워 전체 판매량 하락을 방어했다.
전기차시장에서는 전용 플랫폼 없이 내연기관 플랫폼을 활용한 전기차 코나EV와 니로EV 등을 앞세워 전기차 점유율을 지속해서 확대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글로벌시장에서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기차 130만 대를 팔아 7.2%의 점유율을 보였다. 2019년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은 40.7% 늘고 점유율은 1.5%포인트 올랐다.
현대기아차 글로벌 전기차시장 순위는 같은 기간 7위에서 4위로 3계단 상승했다.
미래 모빌리티사업으로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지도 애플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요소로 평가된다.
정 회장은 로봇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자율주행업체 앱티브와 합작회사 모셔널 설립, 글로벌 모빌리티업체 우버와 도심항공 모빌리티(UAM) 개발 등 글로벌 선도업체와 협력을 통해 현대차그룹의 사업범위를 미래 모빌리티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아자동차(KIA Motors) 회사이름도 자동차(Motors)를 뺀 '기아(KIA)'로 변경을 예고하는 등 전통적 자동차 제조업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감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세계 5위권의 완성차 생산기반과 글로벌 수준의 친환경차 판매 실적을 갖추고 있다”며 “국내에 협력할 수 있는 배터리업체가 많고 한국 정부가 자율주행 관련 규제 정비도 비교적 일찍 닦아 놓아 자동차산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IT업체들에게 현대차그룹은 매력적 협력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