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경영전문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재무를 전공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맏딸과 결혼한 뒤 애경그룹에서 생활용품과 항공 등 주력사업을 이끌고 있다.
1995년 애경산업 사장으로 취임한 뒤 적자를 내던 애경산업을 흑자로 돌려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장영신 회장의 사위가 아닌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1등 브랜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지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애경산업 사장 취임 뒤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브랜드는 과감히 철수하고 불필요한 제품은 없애는 등 내실 위주의 경영을 펼쳤다. 취임 10년 만에 202% 성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현재 제주항공을 맡아 제주항공을 국내 3위 항공사로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애경산업 사장으로 취임해 취임 초 800%가 넘던 부채비율을 200%대까지 낮췄다. 이때부터 ‘장영신 회장의 사위’라는 꼬리표를 뗐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은 안용찬에 대해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어딘가에서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을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와튼스쿨에서 재무를 전공했지만 마케팅감각도 뛰어나다. 미국 폰즈에서 2년 동안 마케팅 전문가로 일했다. 애경산업에서도 1987년 마케팅 과장으로 첫 발을 내디녔다.
인재교육 열의가 대단하다. 업무에 지장을 주더라도 직원교육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들 사이에서 소탈하고 장난기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5년 9월부터 미국 체스브루-폰즈(Chesebrough-Pond’s) 국제국에서 근무했다.
1987년 애경산업 마케팅부에 입사했다.
그 뒤 애경화학 총무이사를 거쳐 1993년 애경산업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1995년 7월 애경산업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06년 애경그룹 생활항공부문 부회장이 됐다.
2012년 7월 제주항공 경영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2006년부터 제주항공을 맡은 뒤 부진한 실적과 부실한 재무구조를 어느 정도 개선해 흑자궤도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01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한국총동창회장으로 선임됐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동안 와튼스쿨 한국동창회장을 지냈다.
◆ 학력
1977년 배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구본걸 LF 회장, 김신배 전 SK 부회장 등이 그의 동문이다.
◆ 가족관계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맏딸인 채은정씨와 결혼해 2녀를 두고 있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과 처남과 매제 사이다.
◆ 상훈
2001년 2월 전경련 국제경영원 제2회 경영인대상을 수상했다.
◆ 상훈
2001년 2월 전경련 국제경영원 제2회 경영인대상을 수상했다.
어록
“제주항공의 지난 10년은 프론티어, 개척, 고난의 10년이었지만 앞으로 10년은 세계적 일류 항공사로 나가는 10년이 될 것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선뜻 가려 하지 않았던 지난 10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민간항공의 역사는 제주항공 출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제주항공 출범으로 독과점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던 소비자들은 이제 시장의 당당한 주체가 됐다.”(2015년 1월 제주항공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애경그룹의 2010년대는 항공의 시대다. 제주항공의 성장과 발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신생 항공사로서 5년 만에 이익을 낸다는 것은 보수적 목표가 아닌 공격적 목표다. 이르면 5년째인 올해 하반기를 시작으로 영업이익 실현이 가능할 수도 있다.”(2010년 8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실적을 단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판촉활동과 이벤트 행사를 늘리는 것은 고통받는 환자에게 치료 대신 마약을 투여하는 것과 다름없다. 당장은 약 기운에 의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기업의 목숨을 갉아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곪은 곳은 과감하게 도려내고, 새 살이 될 만한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 늦지만 가장 확실한 기업의 생존전략이다.”(2005년 4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위라는 점이 기업경영에 장점이 많다. 전문경영인은 아무래도 단기실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래도 오너 가족이다 보니 그런 부문은 초월할 수 있다. 기업의 중장기 비전을 세워놓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도 있고, 한 해 실적 나쁘다고 자리에 위협을 느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2005년 4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시장에서 3등은 없다고 확신한다. 1위권 브랜드는 매장진열이나 입점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 고객은 각 카테고리에서 1,2등을 제외한 3등 이하 제품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여기에 1등 브랜드의 파워가 있다.”(2005년 4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9년 연속 흑자경영의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사람이었다. 어려운 시절에도 사원 교육비를 늘린 것은 그동안 제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 같다.”(2005년 4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애경산업은 2005년까지 1등 브랜드만 살리고 소비자에게 인기없는 제품은 과감히 정리해 철저한 손익관리 경영을 펼치려고 한다. 생활용품시장은 경쟁이 치열해 최고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가 다소 줄더라도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제품에만 역량을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다.”(2002년 10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에게 있어서 고객이란 단어는 소중한 지표다. 고객이 최우선임은 물론이다. 우리 회사의 비전 첫 글자는 고객으로 시작한다. 고객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다. 이 비전의 최우선 가치로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아름다움과 건강함, 깨끗함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으로 삼고 있다.”(2002년 5월 한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잘 나간다는 마케팅 전문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나는 소비자를 안다는 자기과신이다. 제품 개발과정부터 이름 정하기까지 철저하게 소비자들에게 묻는 것, 마케팅의 기본에 충실한 브랜드만이 확실한 경쟁력을 갖는다.”(2001년 5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애경산업에서 일하던 마케팅 전문가들을 여러 회사에서 데려가는 것이 아쉽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직원들의 몸값을 높여주는 기업, 괜찮은 회사 아니겠느냐.”(2001년 5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간부들이 공부하기 힘들어 회사 못다니겠다며 투덜거린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기업의 힘은 바로 사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2001년 5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여러 개의 송곳으로 이곳 저곳 뚫는 것보다 성능 좋은 송곳 한 개로 한 곳을 집중공략하면 두꺼운 벽도 뚫린다.”(애경산업 사장 취임 초기 1등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 평가
애경산업 사장으로 취임해 취임 초 800%가 넘던 부채비율을 200%대까지 낮췄다. 이때부터 ‘장영신 회장의 사위’라는 꼬리표를 뗐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은 안용찬에 대해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어딘가에서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을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와튼스쿨에서 재무를 전공했지만 마케팅감각도 뛰어나다. 미국 폰즈에서 2년 동안 마케팅 전문가로 일했다. 애경산업에서도 1987년 마케팅 과장으로 첫 발을 내디녔다.
인재교육 열의가 대단하다. 업무에 지장을 주더라도 직원교육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들 사이에서 소탈하고 장난기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 기타
애경산업 사장으로 취임한 뒤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몇몇 브랜드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퇴출시켰다.
당시 그의 ‘브랜드 죽이기’는 되도록 많은 브랜드를 만들어 매출을 늘리는 생활용품업계의 관행을 깬 파격적 시도였다. 대신 성공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에 판촉비와 마케팅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교육부터 해야 기업의 미래가 있다'는 신념으로 사원교육에 1인당 200만 원을 쏟아 부었다. 다른 비용은 절감해도 교육비는 절대 깎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다.
애경산업 사장 당시 보고시간을 줄이고 보고내용을 종이 한 장으로 줄일 것을 지시하는 등 효율적 경영을 위해 힘썼다.
애경산업 사장 시절 점심시간 직원들과 산책을 나누는 산책경영으로 유명했다. 이 자리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거나 중요한 경영 현안들이 결정되기도 했다.
2002년 애경산업에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 직원들에게 자기계발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한국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 한경비즈니스, 서울신문 등에 칼럼을 기고했다.
취미는 독서와 골프다. 출장길에 오를 때는 물론 가까운 거리로 이동하거나 가족들과 나들이갈 때도 늘 책을 끼고 다닌다. 일주일에 2∼3권 정도는 꼭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장에 가든 사람을 만나든 늘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책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웬지 불안하다”며 “이렇게 독서를 하면 삶의 질이 높아져서 좋고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일에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는 책은 단체로 구입해서 중역들에게 나눠준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만 너무 몰두하면 앞을 볼 수 없다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라는 의미에서다.
종교는 천주교다.
주량은 폭탄주 10잔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시절 집안 분위기가 자유로웠다고 스스로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술과 담배를 했다.
대학시절 공부뿐 아니라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채형석 부회장과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지금도 단짝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채 부회장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면 안용찬은 채 부회장을 꼼꼼하게 보좌하며 사업추진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