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장 사장이 인텔을 새로운 파운드리 고객사로 맞아들여 최대 실적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인텔 핵심인사가 삼성전자와 지속해서 접촉하고 있어 두 기업이 반도체 생산에 관해 협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으로 손꼽히는 인텔이 삼성전자에 반도체 일감을 맡기면 정 사장은 삼성전자가 꿈꾸는 ‘시스템반도체 1위’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다.
또 인텔은 부족한 미세공정 기술력을 삼성전자를 통해 충족하게 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가 가능하다.
29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파운드리 생태계 개발자들과 기술 동향을 공유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행사 ‘세이프포럼 2020’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라자 코두리 인텔 수석부사장이 참여해 ‘2025년까지 인공지능용 컴퓨팅 1천 배 증가(1000X More Compute for AI by 2025)’를 주제로 발표했다.
코두리 수석부사장은 인텔의 수석설계자로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소프트웨어 등을 맡고 있다. 2018년 AMD를 떠나 인텔에 영입된 뒤 새로운 그래픽처리장치 개발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두리 수석부사장이 삼성전자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4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을 방문한 뒤 현장사진을 트위터 계정에 올리기도 했다. 기흥사업장은 평택사업장, 화성사업장과 함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이 운영되는 곳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코두리 수석부사장이 그래픽처리장치 등 인텔의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할 파운드리기업을 물색하고 있다고 본다.
IT매체 톰스하드웨어는 “인텔은 최근 일부 반도체를 위탁생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대상 제품과 생산처를 정하지 않았다”며 “코두리 수석부사장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교류가 더욱 흥미로워졌다”고 말했다.
인텔은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기업(IDM)인데 최근 10나노급 이하 미세공정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14나노급 공정을 10나노급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율(생산품 대비 양품 비율)을 안정화하는 데 실패해 2018년 말부터 2019년까지 중앙처리장치(CPU) 공급부족 대란을 일으켰다.
인텔 7나노급 공정을 보면 아예 2022년 상반기에서 2022년 하반기~2023년 상반기로 도입시기가 미뤄지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올해 5나노급 공정을 상용화하고 2022~2023년 양산을 목표로 3나노급 공정 개발에 들어간 것과 비교해 현저히 느린 수준이다.
이에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7월 외부 파운드리에 반도체 생산을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일정, 제품 성능, 공급망의 경제성 등 3가지 기준을 두고 파운드리기업을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은승 사장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인텔 제품 수주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TSMC와 비슷한 기술력을 갖췄으면서도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톰스하드웨어는 “TSMC는 이미 생산능력이 제한돼 있고 최첨단 웨이퍼 생산에 관해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반면 삼성전자의 웨이퍼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또 TSMC만큼 수요가 많지 않아 인텔의 주문에 더 많은 생산능력을 할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정 사장은 2017년 삼성전자가 독립사업부로 신설한 파운드리사업부장을 맡은 뒤 꾸준한 성장세를 이끌어왔다.
이날 삼성전자는 3분기 파운드리사업부가 분기별 최대 매출을 새로 썼다고 밝혔다. 정 사장체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츰 대형 고객사 확보에 속도를 붙이면서 모바일과 고성능컴퓨팅(HPC)용 반도체 일감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엔비디아의 8나노급 그래픽처리장치, IBM의 7나노급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등 대규모 일감을 잇따라 수주했다.
퀄컴의 첫 5나노급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냅드래곤875도 삼성전자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계 1위 파운드리기업 TSMC와 격차가 크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3분기 기준 파운드리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17.4%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TSMC는 삼성전자보다 더 많은 고객사를 기반으로 지속해서 실적을 개선하고 있다. 현재 애플과 AMD, 브로드컴, 미디어텍 등 세계적 반도체기업의 제품들이 TSMC에서 생산된다.
특히 애플은 TSMC와 협력이 굳건해 차후 3나노급 반도체도 TSMC에 맡길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인텔이 파운드리기업을 필요로 하는 것 못지않게 정 사장은 새로운 고객사 확보가 절실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파운드리는 고성능컴퓨팅 등 응용처 다변화와 대형 고객 확보를 통해 성장을 가속화할 계획”이라며 “국내외 파운드리 생태계를 강화해 파트너사와 협력을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의 기반이 될 미세공정 및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도 지속해서 늘리고 있다.
2020년 삼성전자 반도체 시설투자는 모두 28조9천억 원 규모로 계획됐다. 지난해 22조5649억 원보다 28.1% 증가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시설투자 규모를 공개하며 “메모리반도체 투자는 향후 수요 증가 대응 등을 위한 첨단공정 전환과 증설로 전년보다 늘어날 것”이라며 “파운드리도 극자외선(EUV) 5나노급 공정 등 증설로 투자 증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