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실적발표를 종합하면 아모레퍼시픽그룹과 LG생활건강은 올해 상반기에 이어 3분기에도 화장품사업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코로나19로 화장품산업이 침체한 가운데서도 LG생활건강은 3분기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모두 늘었다. 반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뒷걸음질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2020년 3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2086억 원, 영업이익 610억 원을 냈다. 2019년 3분기보다 매출은 23%, 영업이익은 49% 줄었다.
LG생활건강은 3분기에 화장품사업에서 매출 1조4490억 원, 영업이익 2472억 원을 거뒀다. 각각 1년 전보다 5.5%, 2.4% 늘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화장품을 주력으로 하는 것과 달리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사업과 음료사업도 벌이고 있는데 이 부문 비중이 3분기 매출 기준으로 24.5%, 20.1%를 차지하고 있다.
서 회장은 실적 부진을 돌파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에 팔을 걷어붙였던 터라 자존심이 상하게 됐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디지털 전환이 늦은 탓도 있지만 브랜드 경쟁력이 두 회사의 실적을 가른 결정적 요인이라는 말이 화장품업계와 증권업계에서 나온다.
올해 코로나19 위기로 화장품산업이 침체되면서 고급 화장품 브랜드 매출이 전체 화장품 매출을 좌우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제품은 경기가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비탄력적 수요를 보인다.
중국은 아모레퍼시픽그룹과 LG생활건강에게 국내 다음으로 최대시장이다. LG생활건강은 ‘후’, ‘숨’ 등 고급 화장품 브랜드로 중국에서 안정적 기반을 다진 반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설화수’의 시장 지위가 확고하지 못하다.
아모레퍼시픽은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사태가 한창일 때 희소가치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 설화수를 면세점에서만 판매할 것을 고집했다. LG생활건강은 직접 중국 보따리상을 찾아다니며 영업망을 확대했는데 이때 두 화장품 브랜드의 운명도 뒤집혔다.
중저가 브랜드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나 라네즈 등은 이미 중국의 로컬 브랜드에 밀려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서경배 회장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미래를 바꾸려면 디지털 전환에 이어 인수합병까지 한 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말이 꾸준히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브랜드 경쟁력만으로는 판을 뒤집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인수합병으로 반전을 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 회장은 올해 하반기 실적 반등을 위해 시장 다변화와 혁신상품 출시, 디지털 마케팅 강화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미 아모레퍼시픽은 인도의 화장품 전문 유통사 ‘나이카’의 온라인채널에 설화수를 입점하는 등 시장 다변화에 뛰어들었고 네이버, 11번가, 무신사 등 디지털 플랫폼과 협력을 강화화며 디지털에서 마케팅도 충분히 강화했다.
결국 관건은 혁신상품 출시에 달려 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이 혼자서 혁신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박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화장품 연구진과 최고의 마케팅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광고회사들도 항상 줄을 선다”며 “본인들만의 조직과 역량으로 무형자산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고 2015년 에어쿠션 대박이 이런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대기업들은 나이트리페어(에스티로더)나 피테라에센스(SKII)와 같은 럭셔리 시그니처 브랜드를 계속 리뉴얼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유행에 민감한 중저가 브랜드와 관련해서는 지속적 인수합병을 통해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경배 회장은 한때 공격적 경영을 펼치며 한국 화장품산업에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국내 화장품기업들이 중국진출을 머뭇거리던 2000년 과감하게 중국에서 상하이 법인을 세우고 뛰어들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6월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1조500억 원 넘게 보유하고 있다. 서 회장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만큼 인수합병 카드를 꺼내드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시선이 화장품업계에 나오는 까닭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