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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유 미니 앨범 '챗셔' 재킷 이미지 가운데 일부. |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그랬어요.”(영화 ‘베테랑’, 조태오의 대사)
가수 아이유의 ‘제제’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애초 ‘문제를 삼았던’ 동녘 출판사가 나서 공식사과했지만 표현의 자유와 소아성애 등 다양한 화두를 던지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10일 아이유의 ‘제제’ 논란을 비중있게 다뤘다.
이 매체는 가수 아이유가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5살짜리 주인공 제제를 모티브로 노래 가사를 썼으며 책을 번역해 출판한 출판사가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논란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동녘 출판사는 10일 공식 페이스북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한 점에 사과를 드린다”며 “다만 원작자의 의도와 그 의도를 해석하고 공감하며 책을 출판해 왔던 우리로서 또 다른 해석을 낯설게 받아들여 그와 관련해 글을 올리게 됐다”고 해명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브라질 작가 J. M. 바스콘셀로스가 쓴 소설이다. 동녘 출판사는 1982년 이 책을 처음 번역 소개해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뒤에도 장기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출판사가 직접 나서 해명성 사과를 뒤늦게 내놓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게시판에 갑론을박이 여전히 뜨겁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아이유 앨범 불매운동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 곡 ‘제제’는 아이유가 23일 발매한 미니앨범 ‘챗셔’(chat-shire)에 수록된 것이다. 특히 논란이 된 가사의 구절은 이렇다.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출판사는 순진무구한 주인공을 ‘교활’하다거나 ‘더러워’라고 표현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출판사의 문제제기는 이번 앨범 재킷 속 망사스타킹을 신은 제제 이미지 논란까지 더해지며 확대재생산됐다.
아이유와 소속사는 논란이 커지자 공식사과를 했으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유는 과거 소녀 이미지와 발표곡들까지 싸잡아 난도질을 당하며 ‘소아성애’(로리타) 콘셉트를 상업화했다는 등 온갖 마녀사냥식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연예계는 물론이고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이번 논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 안 된다는 옹호론이 있는가 하면, 예술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또 단순히 이번 사태가 아이유라는 한 가수를 둘러싼 논란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을 획일적 잣대로 폄하하는 퇴행적 사회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아이유 소속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와 동녘 출판사도 논란이 확산되면서 도마에 올랐다. 로엔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음원 끼워팔기와 사재기 논란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는데 아이유의 최신 앨범에서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여론의 뭇매까지 더해졌다.
노랫가사를 문제삼아 '문제를 만든' 동녘 출판사에 대한 비난도 문화예술인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도서출판 동녘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열기를 출판의 영역에서 실천할 것을 표명하며 세워졌다. 1983년 출간한 ‘철학에세이’, 님 웨일스의 ‘아리랑’ 등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진보적 출판사로 이름을 얻었다.
한 문화평론가는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의 열망 속에 성장한 출판사가 해석의 다양성과 요구조차 용납하지 않은 것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논리와 뭐가 다르겠느냐"고 비판했다.
원작자도 아닌 출판사가 직접 나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상의 자유를 문제 삼은 데 대해 책 판매를 늘리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란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발간된 지 오래돼 사실상 잊혀졌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이번 논란 이후 판매량이 늘면서 서점가 판매순위에 재진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