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이다.
1896년부터 시작해 124년째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4대째 내려오고 있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변신의 역사도 깊다.
박승직 창업주의 포목상에서부터 출발해 OB맥주로 대표되는 소비재산업을 다루다가 2000년대 들어서 그룹의 체질을 중공업으로 완전히 바꿔오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그런 두산그룹이 현재는 100년을 더 이어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변신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도 넘기 어려워 보인다.
두산그룹은 ‘친환경 에너지기업’으로 전환해 이번 위기를 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은 이런 의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해낼까?
◆ 두산그룹의 미래 ‘친환경에너지’, 향후 10년 이상 가시밭길 감수해야
두산그룹의 핵심은 두산중공업이다. 두산중공업과 그 밑에 존재하는 계열사들을 주축으로 두산그룹이 구성돼 있다.
두산중공업은 원자력 발전을 포함해 석탄화력발전이나 해수담수화플랜트, 풍력발전 등 여러 발전플랜트를 주력 사업분야로 하는 국내의 명실상부 1위 발전플랜트 기업이다.
계열사들까지 넓혀서 보면 사업분야는 더 넓다. 두산중공업의 종속기업인 두산인프라코어와 그 밑에 있는 두산밥캣은 굴삭기와 같은 건설기계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듯 ‘모두 중공업’으로 구성된 두산중공업이 체질을 확 바꾸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현재 친환경 에너지 전문기업을 목표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에서 친환경에너지 분야가 아닌 사업은 모두 정리하고 있는데 이는 두산중공업 뿐만 아니라 두산그룹 전체에 해당하는 얘기다.
2015년 온실가스 감축을 결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세계적으로 석탄화력발전뿐 아니라 원전사업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두산중공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계획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옳은 방향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최근 수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이런 말들이 강조됐다. 두산중공업과 두산그룹이 친환경에너지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이런 흐름에 몸을 맡기자는 아주 당연한 얘기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런 계획은 두산그룹에 험난한 10년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두산그룹에서 친환경에너지와 관련한 기업은 두산퓨얼셀과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정도가 대표적이다.
두산퓨얼셀은 두산의 발전용 연료전지사업부가 분사한 회사다. 성장성이 높은 분야지만 2019년 기준으로 매출 2212억 원, 영업이익 195억 원을 내는데 그쳤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도 스타트업 수준에 머문다. 2019년에 매출 6억6335만 원, 영업손실 129억459만 원을 냈다.
두산퓨얼셀과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두 회사의 매출을 합쳐도 두산그룹 전체의 2%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친환경에너지사업에 이 두 회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산중공업에도 석탄화력이나 원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스터빈과 풍력터빈 등 미래 성장동력사업들이 있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은 이들을 주력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풍력터빈사업 등이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두산그룹이 친환경에너지 분야에서 수익을 내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두산그룹 차원에서 보면 문제는 더욱 크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는 매각 대상 계열사(두산솔루스와 모트롤BG, 두산건설, 두산타워, 두산인프라코어)들을 모두 다 떼어내고 난다면 두산그룹의 자산은 절반 수준, 영업이익은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물론 이를 두산그룹 측에서도 모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산중공업이 매년 발표하는 지속경영가능보고서에서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가야할 길이라는 점을 수년 전부터 명시하고 있다.
박지원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은 “세계경제의 저성장기조 이어지고 수년간 지속된 발전시장의 침체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매출도 2012년 7조7천억 원을 냈으나 2019년에 3조7천억 원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2024년까지 신사업 수주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중장기 수주 포트폴리오 수립해놓고 있다.
박지원 회장은 “신사업이 두산중공업의 새로운 성장동력 될 수 있도록 사업의 속도 높이겠다”고도 강조했다.
◆ 위기의 두산, 변신에 성공하느냐 죽느냐 분기점에 선 이유
두산그룹이 이런 변화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정리하면 ‘죽지 않기 위한 시도’라고 정리할 수 있다.
두산그룹은 현재 산업은행 등 정부에서 모두 3조6천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자구안을 실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3조 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하기 위해 주력 계열사들을 모두 팔고 있다. 유망 계열사로 꼽혔던 두산솔루스뿐 아니라 두산인프라코어까지 매각하고 있다.
죽지 않기 위해 살점뿐 아니라 뼈를 내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두산그룹이 현재의 위기를 버텨낼 수 있을지, 위기를 버텨낸 뒤에도 과연 국내 대기업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재계의 관심 쏠릴 수밖에 없다.
두산그룹은 124년 역사를 이어온 기업이다. 하지만 한 번 크게 휘청인 기업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던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두산그룹의 위기는 자못 심각하다.
두산그룹이 소위 ‘차떼고 포까지 떼어 줘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이유를 놓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 탓에 두산중공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두산그룹 전체적으로 타격을 받게 됐다는 분석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두산그룹의 현재 위기는 ‘두산건설 살리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두산건설이 안고 있던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을 해결하느라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계열사들이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두산그룹이 주저앉게 됐다고 봐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2013년 완공된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문제다. 사업 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아 두산건설의 골치를 썩혔던 프로젝트다. 두산건설이 할인분양에 따라 본 손실만 1646억 원이다. 최근에도 아파트를 30%씩 싸게 팔고 있다.
두산건설이 2006년 시작한 울산 대현 주택사업은 10년 만인 2015년에 분양했지만 손실 1437억 원을 안겼다. 이 밖에도 천안과 용인, 화성 등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 보증을 7700억 원 규모로 일으켰지만 아직 분양이 다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무리한 프로젝트 파이낸싱 프로젝트 실패로 두산건설은 2011년부터 9년 연속 순손실 행진을 보게 된다.
두산건설이 약 10년에 걸쳐 본 손실을 메우느라 두산그룹이 지원한 자금만 2조 원에 이른다.
두산그룹은 단순히 두산건설의 손실을 떠안은 것을 넘어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팔아 치우면서까지 두산건설 살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남은 것은 두산건설의 상장폐지와 두산중공업으로의 흡수합병 뿐이었다.
물론 두산건설 문제가 두산그룹을 위기에 몰아넣은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두산중공업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제때 나서지 못했던 것도 문제다.
두산중공업은 주력사업인 석탄화력발전의 성장세가 확 고꾸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체하는 미래전략을 세우는데는 다소 미흡했다.
두산중공업 재무제표를 보면 2013부터 2019년까지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영업이익 감소도 2014년부터 본격화했다.
미국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멜리사 브라운 이사는 “발전설비 제조업체인 두산중공업은 2015년 이후 4년여 동안 진행된 에너지 전환에도 전통적 석탄화력발전 관련 기술에만 주력하는 등 시장 오판을 범했다”며 “국내·외 발전 시장에서의 성장 잠재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10년 동안 세계 석탄화력 투자는 약 80% 감소한 반면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증가했다. 2018년 기준 신재생에너지는 전체의 40%를 차지하면서 가장 많은 비중을 보였지만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의 경우 각각 16%, 6%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산중공업은 여전히 매출의 70% 이상을 석탄화력발전에 의지했는데 이런 움직임들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 두산건설 문제를 왜 질질 끌었을까? 가족경영의 한계
두산그룹이 두산건설을 조기에 구조조정하거나 매각했다면 알짜사업부들을 지켜낼 수 있었을텐데 왜 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까?
두산건설의 문제가 그룹 전체의 리스크로 전이된 배경을 놓고 두산그룹 특유의 가족경영시스템이 이유라고 보는 시각들이 있다.
두산그룹은 3세경영 시기부터 가족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두산그룹의 가족경영체제가 책임소재를 칼같이 구분하기 어려운 한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두산그룹의 회장 승계구조를 보면 몇 년 마다 한 차례씩 회장이 형제나 조카 등에게 넘어가는 구조를 보인다. 현재 그룹을 이끄는
박정원 회장도 4년 전에 자신의 작은아버지인 박용만 회장에게 자리를 넘겨받았다. 박용만 전 회장 이전에는 형제들끼리 회장을 돌려맡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문화가 자리잡기는 쉽지 않다. 다음 회장의 차례가 올 수도 있는데 어느 누군가를 향해 경영부실의 이유를 강하게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정원 회장이 두산걸설 대표이사에 올랐던게 2010년이었다. 하지만 당시 두산그룹 회장이던 박용현 회장과 박용만 회장 모두 두산건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조카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다른 일반 전문경영인들이었다면 경영 악화와 실적 개선 실패의 문제 등을 추궁당해 옷을 벗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박정원 회장은 자리를 계속 유지했고 이를 바탕으로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실제로
박정원 회장이 그룹 회장에 선임됐을 때도 여러 언론에서 두산건설 대표 시절을 봤을 때 경영능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그룹의 회장 자리는 두산그룹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에게 승계됐다.
재계에서는 “언젠가 본인에게 그룹 경영의 기회가 올 수 있는 오너가 입장에선 가족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며 틈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 두산그룹의 ‘가족경영’에는 특유의 ‘트라우마’가 존재한다고?
그렇다면 왜 두산그룹의 가족경영에만 유독 한계가 있다고 지적되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산그룹의 경영방식을 놓고 ‘우애 좋은 가족경영’이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지만 두산그룹의 과거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두산그룹은 3세경영 과정에서 ‘형제의 난’을 겪었던 대표적 재벌기업이다.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은 2005년 박용오 회장이 자신의 동생인 박용성, 박용만 당시 부회장들과 일으켰던 분쟁을 얘기한다.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박용오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이라는 회사를 계열분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가족회의에서 이를 형제간 공동소유, 공동경영 원칙에 위배한다고 판단해 박용오 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박용성 회장이 신임 회장으로 추대됐다.
박용오 회장은 즉각 반발하며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당시 부회장이 17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로 밀반출 했다”며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공모해서 나를 쫓아냈다”고 주장했다.
박용성 회장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박용오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분식 사실을 공표하는 등 형제간 폭로전이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총수 일가의 회삿돈 유용 논란이 벌어지는 등 그룹의 치부가 드러났다.
형제의 난은 두산그룹의 역사에 옥의 티와 같은 사건으로 평가되는데 두산가 형제와 친인척들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평가도 받는다. 형제간 승계원칙을 깬 한 사람의 독자행동이 개인뿐 아니라 그룹의 경영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 지를 모두가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는 나머지 형제들 사이에 순차적 승계 원칙이 더욱 공고히 지켜지는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09년 지주회사체제가 출범한 뒤 초기 두산의 사내이사 7명 가운데 5명이 오너일가로 채워졌다. 서로를 견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후 두산그룹은 4년 주기로 회장을 바꾸는 문화를 정착하고 있다.
◆ 박정원, 두산그룹의 위기 타개할 해법 25년 전 ‘걸레론’에 있다
현재 두산그룹의 위기는 그룹이 뿌리 채 뽑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의 큰 위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껍데기만 남을 수도 있다.
두산그룹이 이를 극복할 만한 해법은 없을까?
두산그룹은 이미 1990년대 중반에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그룹의 운명이 왔다갔다 했을만큼 휘청거렸던 적이 있다. 두산그룹은 당시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 등 지역에서 불매운동 대상으로 지목되며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와 코카콜라, 버거킹, KFC, 네슬레, 코닥, 3M 등 소비재사업을 주로 하던 기업이었기에 타격이 만만치 않았다. 1995년에는 적자 9천억 원, 부채비율 625%로 치솟으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두산그룹은 당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맥킨지에 컨설팅을 의뢰했다. 맥킨지는 “지금 이 상태로라면 3개월 안에 그룹이 망할 수도 있다”며 “경우에 따라 OB맥주를 매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결국 당시 두산그룹 회장이던 박용곤 회장은 알짜기업도 필요하다면 매각하라고 지시했다.
그때 유명했던 것이 바로 ‘걸레론’이다.
박용곤 회장은 당시 “두산은 지속돼야 한다, 알짜기업도 필요하다면 매각해야 한다”며 “나에게도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고 말하며 과감한 계열사 매각을 추진했다.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하고 미련 없이 최고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이 덕분에 OB맥주 등을 줄줄이 매각하며 1조 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쥐었고 2년 뒤 불어닥친 IMF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다시 대기업 반열에 안착했다.
박정원 회장으로서도 25년 전의 이런 일화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미 두산그룹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흐름이 엿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두산솔루스다.
두산솔루스는 아직 미미하지만 곧 전기차시대만 개화하면 두산그룹에 막대한 현금을 안겨다 줄 현금 창출원으로 꼽힌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이를 선제적으로 시장에 내놨다.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을 시장에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지금 좋은 물건을 판 것인데 25년 전의 걸레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추진 놓고 두산밥캣과 통매각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두산그룹의 걸레론이 여기에서도 적용될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 두산그룹의 ‘친환경 체질 전환’은 2000년대 ‘중공업 체질 전환’의 그때와 같을까
두산그룹의 역사가 향후 100년에도 이어지느냐는 두산그룹의 변신이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산그룹의 124년 역사뿐 아니라 대한민국 재계의 역사를 통틀어봤을 때 두산그룹처럼 변신에 능했던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두산그룹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OB맥주로 대표되는 소비재기업이었다. 하지만 소비재기업들을 90년대 말에 전부다 내다판 뒤 2000년대 들어 중공업 회사들을 대거 인수하면서 체질 전환에 성공했다.
2001년 두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뒤 고려산업개발과 대우종합기계, 두산밥콕, 두산스코다파워, 두산엔퓨어 등을 인수하며 중공업이라는 DNA를 두산그룹 내에 깊숙하게 심었다.
이에 따라 두산그룹 연매출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3조 가량이었으나ㅏ 2019년 기준으로 19조 원까지 가파르게 증가했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체질을 바꿔가며 오랜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이런 두산그룹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에너지기업으로 변신에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채널Who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