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타협은 없다는 태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해외에서 기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강조하던 데서 현대차와 기아차, 제네시스 각각의 브랜드 힘을 키우는 쪽으로 변화를 주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도 품질은 전제조건이다.
현대차는 엔진 떨림현상이 발생해 출고를 멈췄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GV80 디젤 모델의 출고를 19일 다시 시작했다.
6월 초 출고를 중단한 뒤 2달 만에 다시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하는 것인데 현대차는 엔진 관련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엔진 내 카본(불완전 연소된 탄소산화물) 누적으로 발생하는 떨림 문제를 해결하고 유효성 검증기간을 거쳐 재출고를 결정했다.
GV80은 현대차가 1월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로 출시한 첫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으로 엔진 떨림현상이 불거진 6월에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이례적으로 출고 중단을 결정했다.
그동안 자동차업계에서는 심각한 결함이 아니라면 일단 차를 출고해 고객에게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현대차가 GV80의 품질논란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말이 나왔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GV80뿐 아니라 최근 들어 품질문제에 철저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는 최근 출시한 싼타페부터 디자인 공개 이후 위장막을 벗기고 한 달가량 수백 대의 차량을 직접 일반도로에서 시험 주행하는 점검단계를 새로 추가했다.
GV80에서 발생한 엔진 떨림처럼 연구소의 가혹한 주행테스트를 통과해도 일반도로에서 운전습관으로 생길 수 있는 품질문제 등을 점검하기 위한 단계인데 기존 일정보다 차량 출시를 한 달 정도 늦추게 되더라도 품질만은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해 코로나19라는 위기에서도 글로벌 완성차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맞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상반기 국내에서 판매량이 늘었고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는 판매량 감소에도 하락폭을 최대한 방어하며 점유율이 오히려 높아졌다.
글로벌 완성차시장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한다면 지금의 좋은 흐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사전에 논란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 수석부회장은 특히 해외시장에서 현대기아차가 가성비로 승부한다는 이미지에서 자체 브랜드의 힘을 키우는 전략에 힘을 주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에서 현대차 팰리세이드 브랜드 그대로 직수입해 중국에서 판매하려고 준비하는 것이나 미국에서 7월 기아차의 K5를 기존 옵티마를 버리고 K5 이름을 그대로 출시하는 모습 등에서 잘 나타난다.
차량의 품질은 승객의 안전과 직결된다. 품질 문제에 발목이 잡히면 그동안 진행했던 브랜드 이미지 개선작업이 빛을 잃게 된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금 품질 논란을 끝내지 않으면 빠르게 다가오는 전기차 등 미래차시대에 더 큰 부담을 안을 수도 있다.
미래차는 크게 친환경과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데 자율주행시대에는 신뢰성 등 브랜드의 힘이 소비자 선택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다행히 현대차 노조가 품질경영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정 수석부회장에게 반가운 일일 수 있다.
▲ 하언태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이상수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이 6월24일 서울남부서비스센터에서 열린 고용안정위원회 품질세미나에서 ‘품질혁신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대자동차> |
현대차 노조는 올해 초 새 집행부 출범 이후 지속해서 품질이 담보돼야 현대차와 노조가 살 수 있다며 품질 개선을 안정적 고용의 전제조건이라는 시선을 보였다.
현대차 노조는 18일 소식지에서도 “포스트 코로나19시대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생존하는 길은 품질력뿐으로 품질의 결정체는 작업자의 손끝에서 나온다”며 “고객이 믿고 사고 싶은 차를 생산해 안정적 물량을 확보하고 고용안정과 임금, 복지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수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과 하언태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6월 GV80 디젤모델의 출고 중단 이후 ‘고객이 만족하는 완벽한 품질 확보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내용의 ‘품질혁신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체제가 본격화한 뒤 고객과 소통하며 품질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높아진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고객만족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품질 개선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