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금호산업의 대면협상 요구를 수용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재실사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정 회장이 여전히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고자 한다면 인수가격을 대폭 낮추는 근거로 재실사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을 수 있다.
10일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이전과 태도를 바꿔 금호산업의 대면협상 요구에 응하겠다고 나선 것을 놓고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를 다시 보인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정 회장이 대면협상을 향후 계약금 반환소송 등에서 거래에 충실히 임했다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재실사를 관철해 기업가치를 다시 산정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시아나항공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됐다고 보고 재실사를 통한 기업가치 재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 회장이 재실사를 전제로 KDB산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아닌 금호산업과 대면협상을 하겠다고 발표한 점도 인수 포기보다는 인수가격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일 수 있다.
채권단이 코로나19 영향을 고려해 아시아나항공 가격 조정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기존 실사로 파악한 기업가치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정 회장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지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정 회장으로서는 아시아나항공 가격을 큰 폭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재실사로 기업가치를 재산정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채권단과 이후 협상이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셈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말까지 이뤄진 실사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가격을 2조5천억 원으로 판단하고 계약이행금 2500억 원도 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로 상황이 급변하며 아시아나항공은 1분기 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가장 높은 6297.8%에 이르는 등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는 “대부분 문제가 실사 과정에서 나와 그보다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후 기업가치를 흔드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만난 것이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는 않았다는 점도 정 회장이 인수를 염두에 두고 재실사에 매달려 보는 이유일 수 있다.
최대현 KDB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인수가 전제된다면 영업환경 분석, 재무구조 개선 목적에서 제한된 범위에서 재실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금호산업의 입장인데 채권단도 동일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대면협상을 통해 인수에 진정성을 보인다면 제한적 범위에서나마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기회를 얻고 이를 가격을 낮추는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코로나19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도 정 회장이 재실사로 가격을 낮추는 데 관심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아시아나항공은 화물수송 덕에 2분기 영업이익 1151억 원을 거두는 ‘깜짝실적’을 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하더라도 수익성을 지켜낼 활로를 찾아낸 것인데 이는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를 놓고 흔들렸던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금호산업이 정 회장의 대면협상 수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은 당분간 더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호산업은 10일 입장문을 내고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인수의지가 변함없고 조속한 거래 종결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만나서 절차를 논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 회장이 바라는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수용 여부까지는 명시적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앞서 11일을 아시아나항공 거래 종결일로 정해두고 12일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감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