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초대형 인수합병에 나설까?
반도체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반도체 설계기업의 주인이 바뀔 가능성이 떠오른다.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애플이 인수후보로 거명되는 가운데 2016년 하만 인수 뒤 멈춰있던 삼성전자의 인수합병 시계가 다시 돌아갈지 주목된다.
14일 IT업계에 따르면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제기돼 반도체 업계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ARM은 저전력 반도체를 전문으로 설계하는 회사로 세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칩(AP)은 거의 대부분 ARM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삼성전자 엑시노스, 퀄컴 스냅드래곤, 애플 A시리즈 칩셋이 모두 ARM에 특허비용을 내고 설계자산을 사용하고 있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음에도 ARM 매각 가능성에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반도체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다. 위탁생산(파운드리)을 확대하는 것 외에 인수합병으로 성장을 도모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아직까지 인수합병과 관련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ARM이 시장에 나온다면 삼성전자가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에 기여할 수 있는 매물이 흔치 않은데다 반도체 설계역량이 삼성전자의 약점으로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엑시노스는 퀄컴 스냅드래곤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앙처리장치(CPU) 연구개발 부서를 폐지하고 다음 엑시노스에 ARM의 코어 설계를 채택하기로 하는 등 설계역량 확보에 여전히 고전 중이다.
ARM의 예상 몸값은 410억 달러(약 50조 원)로 막대한 규모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수년째 인수합병에 나서지 않으며 축적한 순현금만 100조 원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수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전자로서는 경쟁사가 ARM을 손에 넣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 애플은 ARM의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힌다. 애플은 2010년에도 ARM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애플은 최근 인텔과 결별하고 ARM 설계자산을 기초로 자체 개발한 애플실리콘을 맥에 탑재하기로 하는 등 ARM과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소프트뱅크가 ARM 매각을 포함해 기업공개(IPO)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관련 자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을 330억 달러(약 39조 원)에 인수했다. 소프트뱅크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자 손정의 회장이 은퇴를 번복한 뒤 처음으로 진행한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주목을 받았다.
손 회장은 인수 당시 “내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수합병”이라며 “바둑으로 치자면 50수 앞을 내다보고 돌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후 영국 증시에서 상장폐지하고 데이터 분석회사를 추가 인수하는 등 장기 투자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소프트뱅크가 최근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투자 실패 등으로 1분기 적자 16조 원을 내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알짜 자산인 ARM 매각안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ARM 매각 가능성을 놓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 회장의 관계도 주목을 받는다. 대규모 인수합병 거래에서 오너 사이의 인연이 작용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종종 손 회장과 골프 회동을 하는 등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이 ARM을 인수한 직후인 2016년 9월에도 삼성 서초사옥에서 두 사람만 따로 만났다.
이 부회장은 2019년 7월 손 회장이 방한했을 때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과 간담회를 주선했다. 당시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은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며 친밀한 관계를 보였다.
이 부회장은 최근 파기환송심 재판과 검찰수사 등으로 경영활동에 불확실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5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는 등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대외행보에 나서고 있기에 필요성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의 ARM의 인수는 막대한 인수비용에 비춰볼 때 실익이 크지 않다는 시각도 나온다.
거대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하면 설계자산을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ARM의 사업모델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ARM 생태계에서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삼성전자를 향한 견제도 심화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 인수 당시에도 반도체업계에서 ARM의 특허비용이나 가격조건이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다만 손 회장은 ARM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중립적 사업구조를 유지해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