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은 대형생명보험사 가운데 지급여력비율이 가장 낮고 과거 고금리 확정 보험상품을 많이 팔아 역마진이 심한 상황인데 책임준비금이 늘어나면 재무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
▲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 사장.
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LAT)의 할인율을 조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한화생명이 재무 건전성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준금리가 내려가면서 시장금리가 하락해 보험사들의 책임준비금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됨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할인율을 조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한화생명을 비롯해 몇몇 생명보험사는 최근 생명보험협회를 통해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의 할인율 조정 가능성을 금융위원회에 문의한 바 있다.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는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 적용을 앞두고 보험사의 단계별 적응을 위해 2017년 도입한 제도다.
금융감독원은 해마다 상반기와 하반기에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를 진행한다.
책임준비금은 보험회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보험료의 일정액을 적립하는 금액을 말한다.
보험사는 보험부채를 원가와 시가로 나눠 계산한 뒤 시가가 더 크면 결손금이 발생한 만큼 차액을 책임준비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보험부채를 현재가치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도 낮아진다. 할인율이 낮아지면 미래 보험부채의 현재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책임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
할인율이 높아지면 부채의 평가액이 낮아져 책임준비금 적립부담을 덜 수 있다.
한화생명이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 할인율에 민감한 것은 책임준비금 부담이 다른 보험사보다 크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새 국제보험회계기준 도입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 기준을 강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저금리로 한화생명을 비롯해 몇몇 보험사에 연말에 수천억 원대의 결손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일정을 1년 미뤘다.부채 평가액을 결정하는 할인율도 높여줬다.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 기준 강화가 연기되지 않고 지난해 시행됐다면 한화생명의 자본확충 부담이 가장 컸을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IFRS17 도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규제를 완화하기는 힘들다”며 “책임준비금 적립 확대는 보험사가 스스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책임준비금이 늘어나면 한화생명의 재무 건전성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책임준비금으로 적립한 금액은 자본에서 제외되는 만큼 지급여력(RBC)비율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지급여력 비율은 보험사가 보유한 자본(가용자본)을 위험이 발생했을 때 손실액(요구자본)으로 나눠 계산한다.
한화생명은 경쟁 생명보험사보다 자본여력도 약한 편이다.
한화생명의 2019년말 지급여력비율은 235.3%다. 한화생명과 함께 빅3 생명보험사로 꼽히는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339%, 338%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권고치로 잡고 있는 150%보다는 다소 여유가 있지만 생명보험사 업계 평균인 284.6%보다도 낮다.
지급여력비율이 100% 미만이면 금융위원회가 경영개선명령을 통해 퇴출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한화생명은 과거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보험을 많이 팔아 부담금리가 높은 데 반해 운용자산 이익률은 낮아 역마진이 심한 점도 재무 건전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한화생명의 1분기 운용자산 이익률은 4.36%로 1년 전보다 1.05%포인트 높아졌지만 삼성생명(4.9%), 교보생명(5.51%) 등과 비교해 여전히 낮다. 반면 부담금리는 4.5%로 교보생명(4.39%), 삼성생명(4.28%)보다 높다.
한환생명 관계자는 “새로 적립해야 하는 책임준비금 규모가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정확한 규모는 아직 알려줄 수 없다"며 “보장성보험 판매를 통한 보험영업이익 증대와 투자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투자이익을 늘리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