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1조 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해 사상 처음으로 조 단위 증자를 추진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에는 넉넉하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대한항공은 기존에 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 등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올해를 버티려면 3조8천억 원 규모의 자금이 부족하다고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만기가 끝나는 차입금 및 회사채 규모가 1조5천억 원, 연간 금융비용 5400억 원 이상, 지난해 2조1천억 원가량이 들어간 인건비 등을 감안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한항공은 이번 유상증자 및 국책은행 지원 등으로 마련하는 2조2천억 원에 송현동 땅과 왕산마리나 등 추진하고 있는 유휴자산 매각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3조 원가량을 손에 쥐게 되지만 필요한 자금과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김영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번 유상증자 등으로 대한항공은 단기 자금 수요는 충당하겠지만 코로나19 종식이 요원한 상황에서 충분한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봤다.
게다가 송현동 땅과 왕산마리나 자산매각이 언제 이뤄질지,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만큼 추가 자구안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도 4월 대한항공 자금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대한항공이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사업부 매각 등을 통해 앞으로 많은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14일 열린 대한항공 이사회에서는 유상증자방안 외에 기내식과 항공정비(MRO)사업부문 매각 등의 논의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회장으로선 업황이 좋아지면 충분한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는 사업부 또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던 사업부 등의 매각을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기내식사업부는 항공기가 다시 하늘을 날면 곧장 회복할 수 있는 사업부인데다 항공정비(MRO)사업부는 항공기 운항이 정상화됐을 때 유지·보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사업부 매각은 송현동 땅과 왕산마리나 등 유휴자산 매각과는 달리 대한항공의 본업인 항공업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는 만큼 매각 여부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조 회장은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전문경영인으로서 입지를 다져야하는 만큼 당장 눈앞의 자금 위기뿐 아니라 대한항공의 중장기적 경쟁력에 상당한 비중을 둬야한다는 점도 산업은행 등의 요구대로 추가 사업부 매각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대한항공이 이번 1조 원 규모 유상증자로 다른 항공사와 비교해 가장 적극적으로 자구책을 내놓으면서 정부 지원을 받을 명분도 어느정도 챙긴 만큼 이후 상황을 살피며 추가 논의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항공산업의 공급과잉 구조와 글로벌 경기 변동성으로 자본확충 효과는 지속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경험했다”며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시장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키거나 대한항공의 비핵심 사업 및 자산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