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유료방송업계에 따르면 현대HCN과 딜라이브 등이 매물로 나와있는 케이블TV 인수전은 원매자들이 인수합병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매수자 우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유료방송업계의 한 관계자는 “점유율 기준 1, 2위 케이블TV 업체들이 이미 통신사에 흡수된 상황에서 케이블TV 업체들이 사실상 자력으로 생존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살피면 결국 인수전은 통신사들이 시간을 끌수록 매수자에게 유리한 양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동통신사들은 케이블TV 업체를 인수하는 데 급할 것이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미 한차례 유료방송시장의 재편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말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LG헬로비전 인수를 완전히 마무리했다. SK텔레콤 역시 4월 이내로 티브로드 인수를 완료하게 된다.
아직 인수합병에 뛰어들지 않은 이동통신사는 KT 뿐이지만 KT는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운 경쟁사들보다 여전히 10%포인트에 가까운 격차로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수합병 대상이 되는 기업 사이에 경쟁이 붙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딜라이브는 2018년부터 KT와 인수합병을 논의하며 ‘KT의 인수대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지만 KT가 현재 케이블TV 인수합병에 큰 관심이 없다는 뜻을 보이고 있는 만큼 딜라이브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와 인수합병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점유율이 높은 딜라이브, 수익성이 높은 현대HCN이라는 매력적인 두 매물이 동시에 시장에 나와 있다.
이통3사 역시 인수합병 자체가 필요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케이블TV 시장이 축소되고 그 이용자들을 인터넷TV(IPTV) 시장이 흡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대비해 일단 많은 유료방송 서비스 이용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료방송은 유선인터넷, 이동통신 등 이통3사의 다른 서비스와 연계한 ‘결합상품’ 판매가 활발하다는 점에서 유료방송시장에서 덩치가 커지는 것은 인터넷TV나 케이블TV 이용고객 증가 이상의 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뜸을 들이다가 경쟁사에 좋은 매물을 빼앗긴다면 이통3사로서도 뼈아픈 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케이블TV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간을 끌수록 케이블TV 업체에게 인수합병 계약이 불리해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통3사로서도 아예 손을 놓고 있을수는 없고 물밑 작업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이통3사 가운데 어느 한 회사라도 관심을 보이며 나선다면 그때부터는 치열한 인수 경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이통3사가 계속해서 케이블TV 인수에 흥미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을 두고 가격을 최대한 낮추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은 KT가 “딜라이브 인수 검토를 포함해 유료방송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공시한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딜라이브 인수와 관련해 기존 입장에서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KT 커스터머&미디어 부문장을 맡고 있던 시절 KT의 인터넷TV 서비스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경쟁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점유율을 늘리려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인터넷TV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구 사장의 발언 역시 이 때 밝힌 뜻이 변함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HCN을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SK텔레콤 역시 인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현재는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을 완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새로운 인수합병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료방송업계의 한 관계자는 “케이블TV 인수합병에서 협상의 열쇠를 원매자들이 쥐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끊임없이 매각설이 나오는데 일관되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가격을 낮추기 위한 밑작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