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3월 정기 주주총회에 반대 의결권을 적극 행사했지만 주요 의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만 국민연금이 적극적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주주총회 거수기’ 논란을 벗고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 등을 환기한 점에는 의의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전라북도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본사 전경. <연합뉴스> |
30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의결권 행사내역 사전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월28일부터 3월31일까지 정기 주주총회를 연 기업 228곳 가운데 53곳(23.2%)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은 전체 지분의 10% 이상을 보유한 기업 또는 국민연금의 투자포트폴리오에서 1% 이상 비중을 차지한 기업의 의결권 행사내역을 사전에 알린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내역을 살펴보면 상당수는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이익 침해 이력을 문제 삼아 사내·사외이사의 선임·재선임을 반대하는 내용이 차지하고 있다.
조현준 효성 대표이사 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 사장 등 주요 기업 CEO의 재선임안도 포함됐고 국민연금은 여기에 반대의사를 냈다.
그러나 조 회장 등은 모두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국민연금이 반대했던 하나금융지주·삼성전기·삼성증권·메리츠종금증권 등의 사내·사외이사 선임안도 모두 가결됐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가운데에서는 경영성과와 비교해 지나치게 많은 보수금액이라는 이유로 이사 보수와 상여금의 지급한도액 승인안건에 반대한 사례도 많았다.
그러나 SK텔레콤·삼성엔지니어링·LG이노텍·DB손해보험 등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는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련 안건이 그대로 의결됐다.
국민연금은 2019년 12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원칙) 도입에 따른 ‘적극적 주주행동 가이드라인’을 만들면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가이드라인에 맞춰 2020년부터 의결권을 비롯한 주주권을 본격 행사하기 시작했지만 실제 의결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았던 셈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로는 기업 우호지분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국내 주요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꼽힌다.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확보한 대주주라 해도 총수일가나 기업의 우호지분에서 찬성하는 안건을 뒤집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51곳의 내부지분율은 2019년 5월 기준 평균 57.5%에 이른다.
총수가 없는 회사여도 우호지분율이 20~30%대인 사례가 많다.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조용병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확정된 신한금융지주도 우호지분율이 25% 이상으로 추정된다.
다만 국민연금이 그동안 ‘주주총회 거수기’로 취급돼 왔던 점을 고려하면 목소리를 내면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인 2015~2017년 동안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이 연평균 11%대에 머물렀다.
이를 놓고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투자한 기업의 경영 리스크 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이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는 내부 지배구조와 통제시스템이 취약한 기업에 상호보완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바라봤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에 관련된 문제를 시장에 알리면서 주의를 환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해욱 대림그룹 회장은 이번에 대림산업 사내이사 연임을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에서 이 회장의 부당사익 편취 혐의와 관련해 연임에 반대할 수 있다는 예상이 영향을 미쳤다.
국내 유통기업들이 2020년 업황 악화에도 배당률을 전반적으로 높인 것에도 국민연금이 유통기업 전반의 낮은 배당금 문제를 제기해 왔던 점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실효성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맞물려 계속 지적돼 왔던 문제”라면서도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