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현대기아차와 자동차강판 가격을 놓고 협상에 곧 들어간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 상승분을 강판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서 실적이 대폭 후퇴한 만큼 올해 가격 인상이 절실한데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수로 떠올라 난감하게 됐다.
13일 현대제철에 따르면 2월 중순쯤 현대기아차와 상반기 자동차 강판가격을 놓고 협상을 시작한다.
두 회사는 반기마다 가격 협상을 벌이는데 결정된 내용은 소급적용한다.
현대제철은 벌써 2년째 강판 가격을 동결한 만큼 이번에는 꼭 가격을 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현대기아차에 가격 인상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현대기아차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손해를 보고 있다. 또 코로나19 여파가 언제 마무리될지 장담할 수 없는 만큼 더 큰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현대기아차로서는 뜻하지 않게 손실을 내는 상황에 몰린 만큼 가격 인상에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기업으로부터 ‘와이어링 하니스’를 확보하는 데 차질을 빚으면서 7일 울산에 있는 5곳 공장 모두를 멈췄다가 11일부터 순차적으로 공장을 재가동했는데 이 때문에 수천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앞서 현대기아차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을 때 12일 가동 재개를 가정하고 현대차는 1500억 원, 기아차는 4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가동 재개가 하루 앞당겨진 만큼 실제 손실규모는 유 연구원의 추정보다 줄어들 수 있지만 현대차가 2019년 4분기에 영업이익 1조2440억 원을 냈다는 점에 비춰보면 상당한 손해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중국 철강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현대제철이 가격 인상을 밀어붙이는 데 필요한 ‘명분’도 약해졌다.
가뜩이나 현대제철은 계열사인 현대기아차와 가격협상에서 ‘협력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인데 시장상황마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철강재 가격이 떨어지는 마당에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게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중국에서 철강재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의 확진자 수를 처음 발표한 뒤 중국 철강재 유통가격이 내림세를 보였다”며 “이와 관련해 중국 철강회사인 보산강철은 3월 철강 가격을 동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대제철은 가격 인상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가 자동차강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이번에도 가격을 동결하면 실적 개선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이 생산하는 철강제품 가운데 자동차강판의 비중은 2018년 기준으로 47.9%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90%가량을 현대기아차에 공급한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 상승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탓에 영업이익이 67.7%나 줄었다. 특히 2019년 4분기에는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2001년 이후 분기 기준으로 첫 영업적자를 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가격 협상에서 코로나19 얘기를 언급할 수 있어 보인다”며 “협상을 한번하고 끝내는 게 아닌 만큼 실무진들이 여러 번 논의를 거치며 의견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