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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그룹 소유지분구조도는 워낙 복잡해 전자기판 회로도를 방불케 한다는 지적이 많다.<뉴시스> |
‘전자기판 회로도보다 더 복잡하다.’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구도를 놓고 나오는 말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4월 기준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무려 416개에 이른다.
국내 대기업 집단의 순환출자 고리는 같은 기간 459개다. 롯데그룹 순환출자 고리가 이 가운데 90.6%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1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올해 안에 순환출자의 80%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의 거미줄 같은 순환출자 문제는 어제오늘 지적된 것이 아니다.
순환출자란 계열사들끼리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다. A계열사가 B에, 다시 B가 C에 투자하고 C는 돌고돌아 A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국내기업들은 계열사끼리 출자하는 방식으로 있지도 않은 자본을 만들어왔다.
순환출자 문제는 국내 재벌개혁의 핵심사안이기도 했다. 그룹들이 상호출자 규제를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순환출자를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2013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국내기업들은 신규 순환출자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주식취득가액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물어야 한다. 기존출자에 대한 공시의무도 생겼다.
롯데그룹도 법 개정 이후 2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계열사간 지분거래를 통해 고리를 줄이려고 했으나 올해 들어 겨우 1개를 줄이는 데 그쳤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국내 대다수 기업들이 순환출자 고리를 자발적으로 대폭 줄인 것과 대비된다. 삼성그룹은 4월 기준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10개, 현대차그룹은 6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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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1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히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
12일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핵심 계열사 3곳의 지분을 보유한 6개 계열사의 지분을 해소하면 대부분의 순환출자고리가 끊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후지필름, 롯데제과, 롯데정보통신, 롯데칠성음료, 롯데건설, 대홍기획 등 6개사로 이들이 보유한 핵심 계열사의 지분가치는 모두 2조4천599억 원으로 추정된다.
가령 대주주 일가나 계열사가 자사주 형태로 대홍기획이 보유한 롯데제과 지분을 사들이면 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롯데푸드→대홍기획→롯데제과'로 연결되는 순환출자고리를 포함한 총 172개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롯데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데 최소 2조5천 억 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그룹은 계열사 80곳, 매출 83조 원에 이르는 국내 재계 서열 5위의 기업집단이다.
2조 원이 넘는 비용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롯데그룹의 매출이나 자산규모에 비하면 충분히 동원할 수 있는 액수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이 그동안 순환출자 해소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이번 경영권 분쟁 이후 여론과 정부의 뭇매를 맞자 마지못해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8월 9만5033개에 이르렀던 순환출자 고리를 142개로 줄였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허위신고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5월 롯데그룹에 순환출자 고리를 더 줄이라고 압박했으나 롯데그룹 측은 당시 오너 일가의 경영권 행사에 지장이 있어 순환출자 고리를 줄이기 어렵다는 뜻을 공정위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의 요구에도 롯데그룹은 그동안 경영권과 비용문제를 들어 순환출자 해소 문제를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신동빈 회장이 올해 안에 순환출자의 80%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할 수 있는데도 안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라고 말했다.[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