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오너들이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미등기이사로 남아있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오너로서 그룹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보수도 받으면서도 법적 책임 및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 등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49개 집단의 소속회사 1801개 가운데 오너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7.8%(321개) 뿐이었다. |
29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은 그룹에서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도맡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2013년 이후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은 물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등 오너일가의 이름은 계열사 등기이사 명단에 없다.
이 회장 역시 2017년 경영에 복귀한 뒤에도 지주사인 CJ 및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손경식 CJ그룹 대표이사 회장이 일하고 있지만 CJ그룹의 큰 그림은 미등기임원인 이 회장이 그리고 있다.
등기이사와 비등기이사의 차이는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룹 오너는 이사회 논의와 결정을 보고 받는 식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등기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일반 집행임원과 달리 법인의 민형사상 책임을 지고 보수를 공개하는 등 책임경영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룹 전체로 넓혀보면 한화그룹, 신세계그룹, CJ그룹, 대림그룹, 미래에셋그룹, 태광그룹, 이랜드그룹, DB그룹, 네이버, 삼천리, 동국제강 등 10개 집단은 그룹 오너 본인과 그의 자녀들 모두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반면 ‘젊은 총수’의 대표적 주자로 꼽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은 그룹의 다양한 부서와 직위에서 일하며 경영수업을 받은 뒤 모두 등기임원에 올라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전반적으로 대기업 오너일가들이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49개 집단의 소속회사 1801개 가운데 오너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7.8%(321개) 뿐이었다. 지난해 21.8%보다 4.0%포인트 낮아졌다.
등기이사에 오르면 일감 몰아주기 및 각종 공시대상에 오르는 만큼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대다수 오너 및 그의 자녀들이 실질적 경영활동 및 주요 의사결정을 도맡아하고 있는 만큼 전문경영인 방패 뒤에 숨어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경영 부진이나 위기에 따른 책임은 전문경영인에게 물으면서 오너일가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상당한 보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너일가는 등기이사 등재 여부와 관계없이 배당뿐 아니라 그룹 임원으로서 연봉과 성과급 등을 수령하고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더라도 오너일가의 연봉이 줄어드는 사례는 거의 보기 힘들다.
공정위원회는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하고 실제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이사회에서 빠진다는 것은 책임경영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과거 재벌그룹의 소위 ‘경영권 세습’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았던 만큼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 그룹을 이끌 만큼 충분한 ‘자격’이 없는 이들이 단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경영활동을 이끈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세습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어릴 때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경험도 많이 쌓은 오너일가들이 대다수인 만큼 등기이사를 맡아 당당히 경영능력을 펼쳐야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룹 대소사를 진두지휘하는 책임경영을 펼칠 자격이 있는 만큼 혹여 발생할 수 있는 사업실패에 뒤따르는 책임도 오롯이 지는 무게를 견딜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활동을 맡겼다면 전권을 주고 오너는 최대주주로서 경영활동에 참견하지 말고 배당을 받는 수준에만 머물러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